Tuesday, December 21, 2010

요한복음 7:53 - 8:12

7:53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8: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초막절 축제가 끝나고 사람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지만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셨다. 다음날인 안식일에 간음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와서 재판을 요구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스스로 모세율법의 충실한 따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형권이 없는 식민지 백성으로 자신들은 여인을 실제로 죽이지도 못하면서 예수님에게 곤혹스런 재판을 떠넘기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통렬한 메시지이다. 이 말씀은 바로 오만한 지성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어두움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메시지이다.

Saturday, December 18, 2010

고린도전서 12:13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3 For we were all baptized by one Spirit into one body--whether Jews or Greeks, slave or free--and we were all given the one Spirit to drink.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는 것 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교회는 성령을 마셔야 비로소 살아난다. 성령을 마시지 못하면 마셔도 또다시 목마른 그 무엇을 유행처럼 따라다니며 허덕이게 된다. 먹을 음식 말씀과 마실 음료 성령을 주시사 오늘을 살게 하소서.

Friday, December 17, 2010

빌립보서 4:14-16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가난하고 핍박받던 교회,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마게도냐로 선교사역을 떠날 때에도 연약한 데살로니가 교회를 섬길 때에도 바울의 후원이 되었다. 자신의 가난함을 나눔을 통해 부요함으로 바꾼 빌립보 교인들. 진정 믿음의 본이며 하나님의 칭찬이다.

Thursday, December 16, 2010

아나뱁티스트 영성

나는 신자의 침례를 인정한다. 나는 유아세례를 믿지 않으며 종교국가주의는 신뢰하지 않는다. 기독교 국가에서 태어났다고 믿는 부모에서 태어났다고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아비가 누구이든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야 할,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다. 아나뱁티스트들에 대한 재평가들이 이루어지고 있어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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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라이프] 2010년 7월 22일은 세계 기독교 역사를 새로 쓴 날이다. 루터란세계연맹(LWF·Lutheran World Federation)은 독일의 슈튜트가르트에서 제11회 총회를 열어 16세기 당시 루터란이 아나뱁티스트(재세례파)를 박해했던 일에 대해 깊은 용서와 회개를 선포했다. 총회에서는 아나뱁티스트 후예인 메노나이트 교회 대표자들이 참석했고 루터란 지도자들은 이들에게 사죄했다. 루터와 칼뱅 등 개혁가의 반대를 받으며 500년간 박해 속에서 받아온 오해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아나뱁티스트는 종교개혁 시대에 출현했던 개혁적 분파다. 형식에만 그쳤던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세례는 개인의 철저한 신앙고백에 근거해 시행돼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몸 전체가 물속에 들어가는 침례를 실시했다. 이 때문에 반대파들은 이들을 유아세례에 이어 또 한번의 세례를 받는다고 비꼬며 ‘Anabaptist’, 즉 ‘재세례파’라는 별명을 붙였다. 개혁시대 초기에 이들은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유아세례 거부뿐 아니라 당시 마르틴 루터 등이 추구하던 정교일치를 비판하고 철저한 정교분리 원칙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회와 국가가 서로 대치상태에 있다고 주장하고 사회의 권력구조가 교회 속으로 전이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교회를 세속사회로부터 분리된 자발적 공동체로 정의하고 당시 전통과 관습에 도전했다.

개혁파들보다 더 급진적 개혁을 추구하던 이들은 평화주의를 지향했다. 마태복음 5∼7장에 이르는 예수의 산상수훈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저한 제자도를 추구했으며 이에 대한 대가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확실한 신앙고백에 근거한 침례의식, 정교분리, 공동체, 제자도, 평화주의 등은 당시 기독교 환경에서는 혁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단과 반역자로 몰리며 루터파와 가톨릭교회 둘 다에게 핍박을 받았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아나뱁티스트 이단’을 두 발을 묶은 채 물에 빠뜨려 살해하기도 했다. 교회역사가 후스토 곤잘레스는 “순교자의 수는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다. 그 숫자는 아마 콘스탄틴 대제가 회심하기 전 3세기 박해 기간에 죽은 이들보다 많을 것”이라고 기록했다.

최근 한국교회에 이 같은 아나뱁티스트 신앙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아나뱁티스트 신앙을 배우자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 배경은 한국교회가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안타까움에서 기인한다. 정교분리를 주장하면서도 정교일치를 추구하고, 공동체 정신을 상실해가며 세상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제자들만 넘쳐난다는 것이다. 산상수훈에 대한 설교는 많지만 산상수훈에 따라 사는 사람은 적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나뱁티스트 신앙과 삶이 고귀하게 비친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왜 루터와 칼뱅이 아니라 아나뱁티스트일까. 김기현 부산수정로침례교회 목사는 “화해를 바탕으로 한 평화주의, 공동체 지향, 제자도 추구 등이 현대 한국교회의 병폐를 치유할 요소가 되기 때문”이라며 “아나뱁티스트 영성은 예수 정신의 근본을 잃어가며 종교화되는 교회를 향한 치료제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적어도 오늘날 한국교회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목회자를 비롯해 평신도 역시 본질 회복에 대한 목마름으로 넘쳐난다. 아나뱁티스트 영성이 회자되는 이유는 그들은 말 대신 삶으로 예수 정신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2006년 10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소재 아미시학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은 아나뱁티스트의 삶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피해자 가족은 즉각적으로 범인을 용서한다고 알렸고 그 어떤 보복이나 원망의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미국 언론들은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살아온 이들을 별난 사람으로만 치부하다 용서의 모습 앞에 경의를 표했다.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 김경중 총무는 “현대 아나뱁티스트의 특징은 제자도와 비폭력 평화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며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남을 용서하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말했다.현대 아나뱁티스트는 메노나이트, 후터라이트, 아미시파에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신앙 색깔은 조금씩 다르지만 선조들이 추구했던 신앙적 전통은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메노나이트는 가장 큰 규모의 교단으로 메노나이트세계교회 총회 소속 신자만 160만명에 이르고 있다. 아나뱁티스트 영성은 전 세계 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걸출한 신학자이자 기독교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고(故)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 전 노트르담대학 교수는 현대 메노나이트파 대표적 신학자다. 요더의 신학은 스탠리 하우어스(듀크대), 글랜 스타센(풀러신학교) 등 기독교윤리학 대가들에게 이어졌다. 하우어스와 스타센 교수는 자신을 각각 ‘아나뱁티스트적 감리교도’ ‘아나뱁티스트적 침례교도’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메노나이트파의 경우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김경중 KAC 총무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 메노나이트 봉사자들이 국내에 입국해 대구와 경산 지방에서 71년까지 활동했었다”며 “이들은 구호 원조활동뿐 아니라 직업학교를 세워 사람을 키웠다”고 말했다. 2001년 KAC가 설립돼 아나뱁티스트 신앙과 전통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으며 서울과 춘천에 아나뱁티스트 교회가 설립돼 있다. 침례신학대학교 출신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아나뱁티스트 모임 등도 형성돼 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신상목 기자

히브리서 13:3

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3 Remember those in prison as if you were their fellow prisoners, and those who are mistreated as if you yourselves were suffering (히브리서 13:3).

이렇게 번역을 바꾸어 보았다. 갇힌 사람들을 생각하기를 너희가 갇힌 것처럼하고 학대받는 사람들을 기억하기를 너희가 고통받는 것처럼 하라. 주위에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들은 넘쳐난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너무나 드물다.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입으로 가르치려고 하는 선생들은 이 세상은 물론 자신도 바꿀 수 없는 허망한 존재이다. 고통받는 북한의 형제들이 언제쯤 우리의 기도제목이 될 수 있을까? 주여 속히 오셔서 그들의 신원을 들어주소서.

Thursday, November 4, 2010

요셉 슐람 목사 인터뷰

타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보면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보다는 "유사복음" 혹은 "기독교적인 문화" 혹은 자신의 구미에 맞는 신학적 경향성을 띄는 "기독교 교리"를 전하기 쉬운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예수는 작아지고 자신의 사역이 더 중요해진다. "피선교지에 필요한 것은 전하는 자의 신학과 신앙이 아니라 복음의 원 뜻" 이라는 메시아닉 유대인인 요셉 슐람 목사의 이 조언은 반드시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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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라이프] “한국교회여, 언어의 유희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세상이 우리를 보고 예수님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교회 지도자라면 더더욱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고 말이 아닌 삶으로 증거해야만 합니다.”

한·이성경연구소(KIBI) 초청으로 지난달 26∼28일 세미나 및 집회를 인도한 요셉 슐람(64·예루살렘 네티비아교회) 목사의 한국교회를 향한 안타까움은 절규에 가까웠다. ‘메시아닉 주(예수님을 따르는 유대인)’ 지도자인 슐람 목사는 30일 이한에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 신구약에 기록된 말씀의 원뜻을 망각한 채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작위적 해석에 치중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봉은사 땅 밟기 기도 동영상 파문’에 대해 우려했다.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리고 성을 돌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이었습니다(수 6:2∼5). 이외에는 성경 어디에도 영적전쟁을 위해 땅 밟기 기도를 하라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왜곡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대상을 분명히 밝히고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유대인인가, 이방인인가.”

그는 “이사야 예레미아 호세아 등 구약의 선지자는 물론 사도 바울, 베드로 등 사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생각으로 바꿔 전한 적이 없었다”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메신저(전령)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감 없이 전하는 게 전령의 진정한 책무라고 덧붙였다. 슐람 목사는 “한국교회가 미국·유럽의 ‘쓰레기’ 신학과 신앙을 받아들이고 그 쓰레기 가운데 아직도 헤엄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불교도가 기독교인이 되는 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했다. 개종은 육의 문제가 아니라 영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경험할 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고, 이 또한 지난한 과정이 요구된다며 무신론자나 타종교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한다면 열린 마음을 갖고 교류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세상을 정말 바꾸려면 예수님의 보여주셨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사랑밖에 없다고 했다. 슐람 목사는 마태복음 7장 1∼2절을 인용, “다른 사람을 우리의 잣대로 심판하면 우리에게 그 심판이 돌아올 뿐이다. 심판자는 우리가 아닌 하나님임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력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우상숭배는 궁극적으로 만들어진 물체가 아닌 사람의 마음에 의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우상숭배는 이념, 사상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뭐든지 우상을 만들 수 있어요. 기독교인들조차 우상을 갖고 있잖아요. 전도(선교)를 위해선 상대를 존중하고 대화하려는 겸손한 태도가 필수적입니다. 예수님은 (단번에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었지만) 강요하지 않으셨어요.”

슐람 목사는 “복음은 기쁜 소식이지 무섭고 나쁜 소식이 아니다”며 “불교도이든 무슬림이든 누구에게나 복음은 ‘굿 뉴스’”라고 말했다. 아마 한국교회 안에 땅 밟기 기도가 성행하는 것은 교회, 이방인(한국인을 포함)이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대체신학’의 영향인 것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는 옳지 않은 접근”이라며 예수님이나 사도바울이 어떻게 했는지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이어 세리, 창기, 억눌린 자,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에게 예수님은 당시의 편견과 장벽을 뛰어넘어 직접 찾아가셨음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나님의 진리는 거짓 앞에 밝히 드러나는 법이라며 돈, 권력, 제도가 인간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적 테러’조차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죽기까지 사람을 사랑하셨던 예수님과는 달리 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서도 오히려 사랑받아야 할 유대인들을 핍박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1472년부터 1821년까지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 곳곳에서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을 강제로 개종시키려고 했고, 억지로 개종한 유대인들이 그들의 전통 관습을 고수한다면서 이단자로 내몰아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도 유대인을 증오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슐람 목사는 “형제(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독교에 대해 적개심을 갖는 걸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서 “이 때문에 내가 할 일이 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유대인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걸 의미하지 않는 것임을 전하는 게 자신의 사명이라고 슐람 목사는 말했다. “한국인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국인임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한국 기독교를 관찰해보면 예수님이 아직도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메시아닉 주의 입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옆에 앉아 다시 오실 날을 준비하고 계시는데요.”

슐람 목사는 한국교회 교인들이 혹시 거짓 예언자들에 의해 미혹되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예언만 해도 그래요. 사람들은 예언의 참 의미보다는 예언자에 더 열광합니다. 이 때문에 거짓 예언자가 판을 치는 겁니다. 예언은 반드시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벧후 1:20∼21). 하나님의 예언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하나님은 두루뭉술하게 말씀하신 적이 없으세요.”

슐람 목사는 신명기 13장을 잘 이해해야 한다며 거짓 예언은 교회를 파괴한다고 했다. 하나님이 오늘도 예언자를 세울 수 있지만 그 예언자는 반드시 자신의 예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일 누가 나에게 예언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환영해요. 감사할 일이네요. 하나님은 예언을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예언이 사실이 아니라면 나는 성경말씀에 순종할 것입니다. 당신을 동네 밖으로 끌고 가 죽일 것입니다.” 그는 초대교회 당시의 거짓 예언자 모습이 성경에 잘 기록돼있는 듯이 어느 시대에나 그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지만 분별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위로의 말은 다르다는 걸 명심해야 하고 예언자가 예언을 통해 돈벌이를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것에만 관심을 가져야 하고 창조과학, 지적설계론 등 성경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충정은 이해하지만 성경은 달력처럼 인위적으로 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도 그는 미국·유럽의 ‘쓰레기’ 신학과 신앙이 문제라고 했다. 또 피선교지에 필요한 것은 전하는 자의 신학과 신앙이 아니라 복음의 원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회가 이스라엘 복음화에 거룩한 부담감을 느낀 것에는 감사드려요.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절실한 것은 한국기독교, 한국교회, 한국신학과 신앙이 아닙니다. 현지 교회와의 협력, 동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유대인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정체성, 가족 관계 등을 비롯해 모든 걸을 포기한다는 걸 의미입니다.” 슐람 목사는 사람들이 교차로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면 두려움과 불안이 동시에 몰려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서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히네니(Hineni)’, 즉 ‘내가 여기 있나이다(Here I am)’라는 고백이라고 말했다. “히네니라는 단어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들 모두가 공히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는 ‘당신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말을 섬기고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는 뜻이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는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을 드리려 할 때는 이삭이 히네니라고 했습니다.” 슐람 목사는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히네니의 자세로 철저하게 순종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의 뜻에 따르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순종과 섬김, 행함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교회가 세상의 더러운 악에 대해 소리를 발하지 않는 것, 교회가 세상이나 심지어 교인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결코 합당치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요한복음 1장 17절의 말씀을 오해하고 있다고 슐람 목사는 설명했다. 율법은 모세로부터 왔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인해 율법이 필요 없게 됐다는 생각은 ‘난센스’라고 했다(렘 31:33, 마 5:17, 롬 3:30∼31, 롬 7:12).

“구약에 은혜와 진리라는 단어가 20번이나 언급됩니다. 모세를 통한 율법 또한 은혜입니다. 사도 요한은 모세로부터 시작한 율법이 예수님으로 인해 완성됐다고 했어요. 율법 자체가 무용하다는 게 아닙니다. 성경이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슐람 목사는 “로마서를 통해 이방인을 전도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꿨던 바울을 만나게 된다”며 “복음이 율법을 대체하지 않고,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역설했던 바울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면 그들이(이방인이) 이스라엘을 격동시켜(부끄럽게) 주님께로 인도할 거라고 한 것을 잊지 말라(롬 11:25∼32)”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이라면 지난 주 출석하는 교회의 목회자 설교를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미국 맥도날드식 기억, 패스트푸드 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한국 기독교를 갈라놓은 것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교파주의입니다. 사람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갈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면 상대가 설사 나와 다를지라도 용납해야 한다며 인간이 만든 장벽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은 한국교회가 하나 되기를 바라신다며 서로의 생각과 의견이 다르면 인내를 갖고 멀리 보고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슐람 목사는 요즘 이스라엘에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메시아닉 주와 정통파 유대인간 대화가 시도되고 있다는 것. 정통파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을 핍박했지만 소득이 별로 없었음을 깨달은 게 동인이라고 했다. 핍박이 오히려 상대를 더 세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메시아닉 주의 사회적 지위 향상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과거 메시아닉 주는 사회에서 하류 계층을 주로 형성했지만 이제는 군 장교, 대학교수, 비즈니스맨 등 그 영향력이 날로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슐람 목사에게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 언급되는 14만4000명이 유대인인가, 아니면 크리스천을 의미하는지 묻자 성경에 나오는 숫자는 상징이며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답했다. 예를 들어 12는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의미하고 12 곱하기 12는 풍성함을 의미한다. 거기에 1000을 곱한 게 14만4000이니 매우 충만한 상태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는 따라서 성경을 편식해서 읽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구약과 신약을 통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기록은 신약 외에도 율법서 예언서 등에 무수히 나옵니다. 바울이 로마서 11장 26절에서 언급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구약을 인용한거에요. 반유대주의는 성경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아요.”

그는 “어떤 신학이론을 따르면 유대인에게 부정적일 수 있지만 바울서신서 등 성경을 따르면 유대인들을 결코 그렇게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드로후서 3장 14∼18절은 당시 사람들이 바울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어요. 사실 바울의 글은 상당한 수준이거든요. 그는 산헤드린 공회의 지도자 가말리엘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는 단어를 사용할 때 매우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이 때문에 베드로가 무지한 사람들이 바울의 글을 오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거죠.” 슐람 목사는 “어떤 것들(바울의 편지들)은 이해하기 어려워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들처럼 억지로 해석하다가 스스로 파멸에 이르고 있는 것을 경고한 베드로의 지적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바울이 누구를 대상으로 해 말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며 “바울의 모든 글에서 패턴이 있는데, ‘우리는’이라면 유대인, ‘너희’, ‘너희들’이라면 이방인을 뜻한다. 에베소서 2장 11절을 보면 너희, 이방인이 정확하게 언급돼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요셉 슐람 목사는 1946년 3월24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정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뒤 48년 온 가족이 이스라엘로 이주하면서 예루살렘에서 거주했다. 16살 때 예수님을 영접한 그는 히브리대에서 성경과 성경고고학을, 미국 테네시주 네슈빌의 데이비드립스콤대에서 화학과 성경연구를 전공했다. 히브리대에서 역사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예루살렘 네티비아교회 담임목회자, 로에 이스라엘 선교회 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네티비아교회에서 회당식 예배를 인도하면서 유대인들이 거부감 없이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울러 복음전도를 위한 라디오방송국 운영과 무료급식 사역을 하면서 전 세계를 순회, 이스라엘과 성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강조한다. 로마서 주석, 사도행전 주석, 갈라디아서 주석 등의 저서가 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함태경 기자

Monday, October 11, 2010

전도자의 겸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6-7)

사실 말씀은 설교자가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다해 잘 전달할 때 좋은 결과를 맺을 확률이 높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영혼이 변화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리를 단순한 의사전달의 문제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진리는 절대 의사전달이 아닙니다. 논리력과 분위기 장악능력이 생명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지혜로운 말로 전하지 않으려고 주의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무디는 노년에 자기가 평생 설교를 지나치게 잘한 것에 대해 회개했다고 합니다. 진리는 어떤 경우는 반드시 미련해 보여야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반드시 거리끼는 것이 되어야만 하는데 인간의 욕심이 누구에게나 진리를 좋게 보이게끔 변질시키고 있는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세계를 품는 경건의 시간 G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