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29, 20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눅 5: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문둥병이 곧 떠나니라.

(마 14:36) 다만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막 5: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깨끗하게 사는 방법은 세상과 거리를 유지하고 때묻히지 말고 사는 것이다. 까딱 잘못하면 세상이 우리를 더럽힐지 모르니 항상 살피고 경계하며 조심스레 살아가야 한다. 교회가 이런저런 일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여지없이 이런 류의 메시지도 더불어 인기를 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세상을 사랑하신 분이다. 은혜의 빛 아래 살아가는 신자는 세상으로부터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 노심초사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받는 하나님의 의는 세상에 의해 더럽혀지고 손상되는 그런 허약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세상을 깨끗게 하고 치유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Monday, March 18, 2013

로마서 6:11

(로마서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Likewise reckon ye also yourselves to be dead indeed unto sin, but alive unto God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여기서 “죽은 자로 혹은 살아 있는 자로 여기라”는 말은 뭔가 찜찜한 면이 있다. NIV에서 consider로 KJV에서 reckon으로 번역된 이 단어는헬라어로 λογίζομαι (lo-gē'-zo-mī 로기조마이) 이다. Strong’s lexicon에서는 이런 설명을 부가하고 있다.

λογίζομαι : This word deals with reality. If I reckon (logizomai) that my bank book has $25 in it, it has $25 in it. Otherwise I am deceiving myself. This word refers more to fact than supposition or opinion.

이 단어는 심리적 용어가 아니다. 회계장부에서 빚이 있다면 있는 것이고 빚이 청산되었다고 하면 빚이 없는 것이다. 너무나 확실하고 현실적인 용어이다. 우리의 빚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깨끗하게 청산되었다. 신자는 죄에 대한 빚이 완전히 청산된 살아 있는 자이다.

Monday, March 4, 2013

나무를 심는 사람

http://www.youtube.com/watch?v=OwT3fEp0tUE

헛슨강변에서의 기도

오늘 중앙일보에 뉴욕한인교회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파란색 정문바로 옆에 있는 예배당에서 기타를 치며 찬양도 하고 토요일 저녁마다 기도모임도 했었다. 바로 아래의 지하에서 성경공부도 하고 그 옆 부억에서 밥도 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어느 주일에는 전교인을 대상으로 점심준비를 하느라 엄청난 양의 국수를 삶은 적도 있다. 안익태 선생이 쳤다는 피아노는 키보드 한쪽이 없었던 기억도 있다. 교회 앞의 길을 따라 내려가면 허드슨 강변의 리버사이드 공원이 있고 그 강변의 길을 따라서 아내와 데이트도 하고 운동도 했었다. 당시 교회는 양쪽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이었다. 다들 인간적으로는 좋으신 분들이었는데... 예수님보다는 예수운동이 우리의 관심이 되면 늘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출처: 중앙일보 3월 4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10832939) "일제강점기에 미 동부지역 독립운동의 산실 역할을 했던 건물이 한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뉴욕한인교회’다. 이 교회는 3·1운동 2주년 기념으로 1921년 3월 2일 서재필 박사가 주도해 1300여 명의 한인동포와 친한파 미국인이 모여 연 ‘한인연합대회’에서 탄생했다. 두 차례 거처를 옮긴 끝에 1927년 조병옥·이용설 등이 주도해 현재의 건물을 사들여 입주했다. 이후 서재필·이승만·안익태·조병옥·김활란 등 수많은 애국지사가 이곳에 기숙하거나 거쳐가며 독립운동의 산실이 됐다. 이 교회 이용보 담임목사는 “당시 컬럼비아대에 다녔던 한인 유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교회에 모여 일제 식민의 울분을 토로하면서 동부지역 독립운동가의 거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Tuesday, February 5, 2013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은 우리를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복음의 실체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실체는 인간의 선행이나 거룩이 아니고 천국이나 지옥도 아니며 바로 ‘구속’입니다. 현재 복음 사역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구속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주의 사역자로서 우리는 구속만이 유일한 실체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거룩은 우리 안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구속의 결과로 나타나는 인간의 선함에 둔다면, 시험이 올 때 그 믿음은 무너집니다. 바울은 자신이 스스로 구별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성품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한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깨끗함에만 신경을 쓰는 자는 결코 구속의 실체에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사역자들이 실패해서 쓰러지는 이유는 그들의 관심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자신의 의로움을 보이려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나 자신의 성품 개발에만 관심이 있는 한,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 구별된 바울은, 자신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이 목적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글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지난날 배우고 듣고 알고 있었던 것들에서 심각한 오류를 발견한다. 이런 것들을 지우고 새로운 발견을 하고 있는 중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은 거룩이 결코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거룩을 위해 힘쓰는 삶은 저주 아래에 있는 삶이다. 그는 불행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의 꿈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항상 부끄러운 존재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거룩은 우리가 이루기 위해 억지스럽게 추구해야 할 성취의 대상이 아니다. 은혜의 복음의 빛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런 열매이며 결과이다. 이런 자연스러움이 진정한 거룩이다. 그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샬롬이 된다. 억지스러움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외식하는 삶에 가까운 것이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목회자들이 ‘신앙의 실천 부족’을 꼽았다."

오늘 아침 교계신문에 난 기사이다. 눈에 보이는 문제를 논하기 전에 '신앙의 실천 부족' 그 문제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훨씬 더 중요한데...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Monday, January 21, 2013

플루후기

요 몇일 몸이 많이 아팠다. 미국에 출장을 다녀오고 바로 시작된 새학기 강의를 마치고 나서 목이 아프더니 결국은 고열과 두통으로 이어졌다. 출근도 못하고 누워 있는데 두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엄마 생각을 하면서, 의학박사도 아니고 약학박사도 아닌 시골의 이름없는 약방 주인이 지어준 약은 신통하게 잘 들었나 생각을 해 보았다. 인간이 만드는 첨단기술로 따라올 수 없는 따듯한 말 한마디, 마음을 담아 쓰다듬어 주는 손길, 그런 사랑에 대한 절대적 신뢰 이것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닐까?

고열이 나면서 식은 땀을 많이 흘렸다. 샤워를 하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나는 의식이 희미해지는 경계선에서 자신을 지탱하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나의 의식이 또렸해지고 열도 내리고 회복단계로 접어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동안 달고 다녔던 불순물들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침 등교길이 아프기 전보다 더 깨끗해진 것 같다.

Saturday, January 19, 2013

어느 교회를 섬기고 계십니까?

어느 교회를 섬기고 계십니까?

많이 받는 질문이다. 신앙의 색깔을 슬쩍 떠보는 속셈도 있는 같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말하자면, 보수적인 교회에서 출발해서 진보적 교회, 한국에 있는 교회에서 해외에 있는 한인교회, 그리고 해외의 로컬교회까지 두루 출석해오고 있다. 질문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이런 질문에 열정을 토해내지 않는다. 얘기하듯 무덤덤하게 넘겨 버린다. 목사님의 설교가 어떻고 제자공부와 소그룹이 어떠하고 차세대 리더를 세워나가는 것이 어떠하다 등의 얘기를 쏟아내며 비판과 걱정들을 하시는 것을 본다.

주로 사역적인 측면에서다. 시간을 만나도 주님보다는 사역이 이야기의 주제가 된다이런 결심(?) 해본다.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예수님 얘기를 많이 해야겠다.

Kingdom 이전에 King 이 더 본질적 관심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