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ne 27, 2009
Friday, June 26, 2009
상처입은 치유자
Henri Nouwen - 어느 누구도 상처 없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육체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또 영적으로든 모든 이는 나름대로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상처 앞에서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또 어떻게 이 상처를 감추고 싸맬 수 있느냐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내 자신의 상처를 다른 이를 위한 봉사로 환원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처가 더 이상 아픔이나 부끄러움으로만 남지 않고 다른 이를 위한 치유의 원천이 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비로소 상처입고 아픔 많은 자이지만 다른 이의 치유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Nobody escapes being wounded. We all are wounded people, whether physically, emotionally, mentally, or spiritually. The main question is not “How can we hide our wounds?” so we don’t have to be embarrassed, but “How can we put our woundedness in the service of others?” When our wounds cease to be a source of shame, and become a source of healing, we have become wounded healers.
Thursday, June 25, 2009
마지막을 알면 포기하지 않는다
"플로렌스 채드윅" 이라는 수영 선수는 1952년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에 캘리포니아 해안으로 부터 35킬로미터 떨어진 카타리나 섬에서 해안까지의 수영에 도전 했습니다. 16시간이나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쉬지 않고 상어떼의 위협에서 보호해주는 것이라곤 양편의 구조선이 전부였지만 이젠 마지막 반 마일 (800미터) 이 남아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안개가 꽉찬 한 치 앞도 볼수 없는 바다가 보였습니다. 그만 힘을 잃고 수영을 포기했습니다.
1952년 9월 4일에 다시 도전했습니다. 양편의 구조선이 전부였고 이젠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안개가 꽉찬 바다였지만 성공 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목표지점을 마음속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헤엄칠 수 있었습니다."
1952년 9월 4일에 다시 도전했습니다. 양편의 구조선이 전부였고 이젠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안개가 꽉찬 바다였지만 성공 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목표지점을 마음속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헤엄칠 수 있었습니다."
QT-창세기 50:15- 26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22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23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창조와 시작의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야곱과 요셉의 죽음으로 끝을 맺고 있다. 요셉은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알면서 형제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었다. 악을 선으로 바꾸는 구원의 역전 드라마를 알면 용서할 힘이 생기고 더이상 사단에 농락당하면서 살지 않아도 된다. 이로써 하나의 부족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이 국가단위로 자라나는 정신적 물질적 기초가 마련된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상황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지난일들도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중요한 재료로 사용된다.
창조와 시작의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야곱과 요셉의 죽음으로 끝을 맺고 있다. 요셉은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알면서 형제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었다. 악을 선으로 바꾸는 구원의 역전 드라마를 알면 용서할 힘이 생기고 더이상 사단에 농락당하면서 살지 않아도 된다. 이로써 하나의 부족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이 국가단위로 자라나는 정신적 물질적 기초가 마련된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상황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지난일들도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중요한 재료로 사용된다.
Wednesday, June 24, 2009
QT-창세기 49:29-33
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32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막벨라 동굴. 약속의 땅이라지만 가나안에 있는 히브리인의 유일한 소유지였다. 아브라함이 장차 후손들이 이국땅에서 400년 종살이를 한 후에 되돌아올 것이라는 계시를 받은 후에 믿음으로 구입한 땅이었다. 야곱에게도 그 가나안 땅은 후손들이 지금은 고센지역에서 잘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약속의 땅이었다. 이렇듯 믿음은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고 지금 준비하고 행하는 것이다. 사실 애굽도 가나안도 다 하나님의 땅인데 애굽에서 자손들이 터 잡고 더 잘살수 있도록 야곱을 기념하는 큰 무덤이라도 만들면 될텐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400년 후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장대한 구원의 역사를 모르는 다분히 인간적인 생각인 것이다. 난 오늘 다시 생각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약속의 땅은 어디인가? 바라 보아야 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를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막벨라 동굴. 약속의 땅이라지만 가나안에 있는 히브리인의 유일한 소유지였다. 아브라함이 장차 후손들이 이국땅에서 400년 종살이를 한 후에 되돌아올 것이라는 계시를 받은 후에 믿음으로 구입한 땅이었다. 야곱에게도 그 가나안 땅은 후손들이 지금은 고센지역에서 잘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약속의 땅이었다. 이렇듯 믿음은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고 지금 준비하고 행하는 것이다. 사실 애굽도 가나안도 다 하나님의 땅인데 애굽에서 자손들이 터 잡고 더 잘살수 있도록 야곱을 기념하는 큰 무덤이라도 만들면 될텐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400년 후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장대한 구원의 역사를 모르는 다분히 인간적인 생각인 것이다. 난 오늘 다시 생각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약속의 땅은 어디인가? 바라 보아야 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를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Tuesday, June 23, 2009
QT-창세기 48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는 야곱은 이제 그의 아들들에 대한 예언과 축복을 하게된다. 이 예언은 시의 형태로 후대들에게 남겨졌다.
- 르우벤: 장자. 능력이 탁월하였으나 정욕을 절제하지 못함. 아버지의 첩 빌하와 간통. 탁월하지 못하리라는 예언 받게 됨.장자권 중 물질적인 축복은 요셉에게 영적인 축복은 유다에게 옮겨짐.
- 시므온과 레위: 분노로 사람을 죽이고 재미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음. 세겜에서의 살육 사건. 분노에 대한 저주와 이스라엘 중에 흩어짐을 예언.
- 유다: 형제간의 용서와 화해의 역할을 함. 형제의 찬송과 높임을 받고, 사탄의 목을 잡게 될 것임을 예언. 통치권이 실로 (참된 평화, 구세주) 오시기까지 미치며 그 앞에 모든 백성들이 복종하게 될 것임을 예언. 나귀를 타고 오실 평화의 왕이 유다에게서 날 것을 예언.
- 스불론: 이름이 거주지를 뜻함. 지중해에 인접한 거주지에 대해 예언.
- 잇사갈: 이름이 일꾼을 뜻함. 기꺼이 어깨에 짐을 멤. 쉼과 기업을 얻음.
- 단: 뱀이요 독사라고 묘사 (사사 시대에 제일 먼저 우상을 숭배함. 계시록에 단지파가 누락).
- 갓: 이름이 추격하다는 뜻. 추격을 받으나 추격함. 요단 건너편의 땅을 받고 모압과 암몬과 싸움.
- 아셀: 지중해변에 위치. 기름지고 풍성한 식물을 수확.
- 납달리: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암사슴. 가나안 북방의 척박한 땅이 기업. 예수님 사역의 무대.
- 요셉 (에브라임과 므낫세): 샘 곁에 있는 무성한 가지. 가지가 담을 넘음. 요셉의 구원이 온 가족과 열방에 미치게 됨을 예언.
- 베냐민: 물어 뜬는 이리 (호전적 성격으로 다른 지파들과 싸우고 진멸당할 위험을 겪음).
야곱은 아들들을 축복하되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 (giving each the blessing appropriate to him). 야곱의 이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만일 유다라면 혹은 요셉이라면… 아니라면 받은 축복을 감사하면서도 약간 속이 쓰릴것 같다.
Friday, June 19, 2009
스펄전의 아침묵상 중에서
만일 우리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된다면 이 아침이 참으로 복된 아침이 될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성령으로 충만해졌을 때의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생명과 위로, 빛과 정결, 능력과 화평, 이 외의 다른 많은 소중한 축복들이 성령의 임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성령은 거룩한 기름을 성도의 머리에 부어 그를 제사장으로 삼으며 그가 그 직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진실로 정결케 하는 유일한 물인 성령께서는 우리를 죄의 세력으로부터 씻어 주시고 우리 안에서 우리가 주의 선하신 뜻을 택해서 행하도록 역사하면서 우리를 거룩하게 성화시키십니다. 빛되신 성령은 처음에 죄 가운데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 안에 주 예수님을 계시하시며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순전한 천국빛을 받아 교육받은 우리는 더 이상 어둠이 아니라 주 안에 있는 빛입니다. 불로서의 성령은 우리의 불순물을 제거해 주시며 우리의 성별된 본성이 활활 타오르게 하십니다. 우리는 희생의 불꽃인 그를 통해 우리의 온 영혼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바칠 수 있습니다. 또한 천국의 이슬인 성령은 우리의 메마름을 제거하시고 우리의 삶을 비옥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오 성령이시여, 이 이른 아침 시간에 이슬되어 위로부터 우리에게 떨어지소서! 이 아침에 성령의 이슬 방울이 떨어진다면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은 또 비둘기처럼 화평한 사랑의 날개로 그의 교회와 성도들의 영혼을 품어 줍니다. 그리고 위로자로서 그의 사랑하는 자들의 평강에 해를 끼치는 염려나 의심들을 몰아냅니다. 또 여호와께서 요단강에 임하셨던 것처럼 택함받은 백성들 위에 강림하시며 그들 안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녀의 영을 불어 넣어 줌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 주십니다. 바람으로서의 성령은 사람들에게 생기를 가져다 주십니다. 그는 임의대로 부시며 소생케 하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그로 인해 영적인 생명들이 살아나고 지탱됩니다.
오 성령이시여, 이 이른 아침 시간에 이슬되어 위로부터 우리에게 떨어지소서! 이 아침에 성령의 이슬 방울이 떨어진다면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은 또 비둘기처럼 화평한 사랑의 날개로 그의 교회와 성도들의 영혼을 품어 줍니다. 그리고 위로자로서 그의 사랑하는 자들의 평강에 해를 끼치는 염려나 의심들을 몰아냅니다. 또 여호와께서 요단강에 임하셨던 것처럼 택함받은 백성들 위에 강림하시며 그들 안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녀의 영을 불어 넣어 줌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 주십니다. 바람으로서의 성령은 사람들에게 생기를 가져다 주십니다. 그는 임의대로 부시며 소생케 하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그로 인해 영적인 생명들이 살아나고 지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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