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November 21, 2012

일은 아담의 범죄 이전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이다. 일이 저주가 된 것은 범죄한 것 때문이다. 나는 일이 너무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씨리어스하기만하고 책임감에 짓눌려서 하는 노동은 저주일 것이다. 누구 말대로 죽어라 일하다 죽어버리는 것은 결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 아니기 떄문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책임있는 일을 맡게 된다. 시간이 모자라고 자다가도 슬그머니 일어나 일을 생각한다. 일의 결과가 가져다 주는 시장적 가치에 몰두하다 보면 일이 주는 기쁨과 감사를 쉽게 빼앗긴다. 우리의 육신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역전현상이다. 견고한 진은 다름아닌 모든 것을 콘트롤하면서 살고자 하는 우리의 생각임을 깨닫는다. 나가 하는 일에서 정오의 내리쬐는 태양아래의 그 목마름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

Thursday, October 4, 2012

회복해야 할 복음

(Rome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래전에 묵상한 것을 다시 묵상한다. 반복적으로 들어왔던 것들 그리고 내 안에서 굳어져서 딱딱해진 것들이 새롭게 되어야 할 것들을 발견한다. 내가 밟는 땅, 만나는 사람들, 하는 일들, 이 모든 것들에게 예수님의 샬롬을 전하고 싶다. 그러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나자신 그리고 내가 한 일들은 싫어하고 거부하는 상황들을 대할 때마다 나는 억울한 대접을 받고 운이 좋지 못한 케이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말과 하는 일들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들이 묻어나고 사람들을 거북하게 만들고 있음에도 양심적으로 더욱 수고하고 정성을 다하면 되는 줄 알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스스로 잘못된 길에서 헤매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길을 떠들고 다녔다는 것이다. 시작은 은혜로 하였으나 실상은 옛언약 율법의 저주아래서 예수님의 샬롬을 잃어버리고 사는 모습이 이런 꼴이다.

예수님은 행위로 말하자면 죄를 짓지 않으셨지만 우리에게 마땅한 죄가 예수님의 죄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행위로 말하자면 우리는 의가 없지만 예수님에게 마땅한 의가 우리의 의가 되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받는 의는 우리의 행위에 따라서 달라지는 그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이다. 그 의는 믿음으로 받는(receive) 선물이지 행위나 노력의 댓가로 얻는 (earn) 것이 아니다. 그 의를 가진 사람은 세상의 빛이다. 그는 숨겨지고 가려지는 않는다. 그가 밟는 땅, 만나는 사람들, 하는 일들에서 반드시 드러난다.

Thursday, August 16, 2012

신명기 9:1-6

1 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2 크고 많은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그에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거니와… 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아낙자손에 대한 두려움의 뿌리에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가. 바로 교만과 자기 의이다. 담대함으로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처방은 한결같다. 이미 완성된 그리스도 예수의 의를 현재진행형으로 선물로 값없이 받는 것이다. 우리의 약함은 우리의 부끄러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자랑과 감사가 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것을 통해 흘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Tuesday, July 10, 2012

로마서 5:20 (은혜받을만한 최적의 때는)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But where sin abounded, grace did much more abound:

더욱 넘친다는 말은 그리스어로 한 단어, ὑπερπερισσεύω (hyperperisseuō), 이다. "ὑπερ" 접두어는 super 혹은 hyper의 뜻이다. Thayer’s Lexicon 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1) to abound beyond measure, abound exceedingly 2) to overflow, to enjoy abundantly.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을 만한 가장 적합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자격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을 만한 가장 적절한 때는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자격없다고 여겨지는 그런 때이다.

Wednesday, June 13, 2012

로마서 7:21-8:1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이것은 어느 불신자의 고백이 아니다. 나이롱 신자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없다.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이 겪는 처절한 좌절이다. 죄의식과 정죄감은 하나님을 모를 때 보다 더욱 그를 괴롭힌다. 나는 예수를 믿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배웠고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안에 있는 자유와 해방의 폭포수로 나아 가기 위한 내 안에 있는 음침한 골짜기이다. 진정한 신자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결코 정죄함 (condemnation)이 없다.

Tuesday, June 12, 2012

로마서 7:19-20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신자는 죄에 대하여 (6장) 그리고 율법에 대하여 (7장) 이미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진 사람이다. 여전히 원하지 아니하는 것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다. 그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심판을 받았다. 그 존재의 권세에 매여 살 필요가 없다. 진정한 나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활한 의인의 권세를 누리고 사는 자유인이다.

Friday, June 8, 2012

로마서 6:14-18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인간의 어떠한 결단도 죄 앞에 무력하다. 죄는 단순히 인간이 통제할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을 구속하는 권세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으면 죄에 대한 가르침은 “해라 하지 말아라” 하는 인간중심의 규범적이고 율법적인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은혜의 복음을 하나님의 능력(두나미스)이 됨을 믿지 않으면 은혜아래 있으면 죄를 더 짓게 된다는 오류에 빠지며 또다시 생명력 없는 인간중심의 율법적 신앙의 함정에 갇히게 된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너희가 이제 은혜아래 있기 때문에 더이상 죄가 너희를 지배 (dominion)하지 못한다." 은혜의 복음은 우리의 통념은 여지없이 깨뜨린다. 믿음을 통하여 선물로 받는 하나님의 의. 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고 우리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