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September 27, 2011

복음과 편견

강단에서 예수의 피흘리심을 원색적(?)으로 전하는 것은 사람들을 거북하게 할까? 이것은 복음을 전하지 않는 변명이고 편견이지 진리가 아니다. 정반대로 신자들을 깊은 평안과 기쁨으로 인도한다. 우리의 죄사함의 근거를 멋있게 들리고 그럴듯하고 좀 덜 거북한 다른 것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는 모두 엉터리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쁜 소식을 뭔가 불안한 소식으로 변질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의 죄를 대충 봐주셔서 디스카운트 해주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에누리 없이 값을 치루셨다. 우리가 얻는 죄사함은 어정쩡하거나 뭔가 찜찜한 그 무엇이 아니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여전히 빚진 사람처럼 속고 살아 가는가? "It is finished..." 그러므로 우리는 깊은 안식을 누리게 된다. 많은 신자들이 이런 복음에 목말라 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Tuesday, September 6, 2011

육신 vs 은혜

(마 11: 26)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시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종교는 인간에게 결국은 무거운 짐이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교를 확실히 그렇게 보셨다. 우리의 육신은 언제나 은혜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어떤 괴로움과 역경을 통해 자신의 헌신과 믿음의 경지를 검증해줄 객관적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절차를 밟아야만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미니스트리가 아니라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믿음으로 받고 그분의 다스림에 참예하는 은혜의 삶이요 안식의 삶이다.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