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26, 2012
스마트폰 유감
드디어 스마트 폰이란것을 구입했다. 내 인생의 첫 모바일 폰이다. 사람들과 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싫고, 혼자있는 자유가 좋아서, 또 솔직히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구입하지 않았었다. 구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보면서 하는 화상통화는 어색해서 갑자가 할말도 잊어버리게 하고, 문자메시지의 대부분은 아내에게 보내는데 내용은 "지금 뭐하나여? 뭘먹을까?" 등 하나마나한 헛소리들이 대부분이다. 걸어서 출퇴근을 하는 시간은 나에게는 기도와 묵상의 시간이었는데, 요즘은 자꾸만 무언가를 해야할것 같은 충동을 느낀다. 조금 불편했지만 깊이가 있었던 얼마전의 그 시간들이 그립다 (사진은 연구실에서 바라 본 석양이다).
Tuesday, January 3, 2012
아담의 비극으로부터 우리를 살리는 것은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 (권세)은 율법이라 (고전 15:56).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
이 시대는 자신이 지키지도 못하는 계명들을 쏟아낸다. 이런 류의 메시지는 교회가 세상의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이런 메시지는 과거에 잘못했던 것, 부족했던 것은 없는지 앞으로 더 잘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performance-based 로 우리를 몰아간다. 우리는 스스로 율법주의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얼마나 performance로 스스로를 몰아 세우고 있는지를 보면 안다. 아이러니중의 아이러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계명들을 지킬 능력 (두나미스)은 점점 소진되고, 지키지 못하는 계명들의 부채는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지 못해서, 용서하지 못해서, 기도하지 못해서, 헌신하지 못해서, 거룩하지 못해서, 똑바로 살지 못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죄송하고 면목없는, 실패감으로 살아가는 아들들을 양산해낸다. 솔직히 신앙의 이력서에 쓸 것은 많아지는 것 같은데,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은 내놓기가 부끄럽다. 이것이 인간 (아담)의 비극이다. 사실 아담 이래로 이 비극은 계속 되어 왔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아담에게 찾아온 condemnation 과 두려움 가운데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실존이다. 이 비극으로부터 우리를 살리는 것은 복음이다. 더 큰 도덕적 촉구와 더 큰 헌신과 결단이 아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를 결박에서 풀어 주는 메시지이지 우리를 더욱 조이는 메시지가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죄와 율법에 대하여 이미 죽었고, 아담의 비극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끝이 났다. 이 소식이 우리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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