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ne 13, 2012

로마서 7:21-8:1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이것은 어느 불신자의 고백이 아니다. 나이롱 신자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없다.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이 겪는 처절한 좌절이다. 죄의식과 정죄감은 하나님을 모를 때 보다 더욱 그를 괴롭힌다. 나는 예수를 믿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배웠고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안에 있는 자유와 해방의 폭포수로 나아 가기 위한 내 안에 있는 음침한 골짜기이다. 진정한 신자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결코 정죄함 (condemnation)이 없다.

Tuesday, June 12, 2012

로마서 7:19-20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신자는 죄에 대하여 (6장) 그리고 율법에 대하여 (7장) 이미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진 사람이다. 여전히 원하지 아니하는 것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다. 그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심판을 받았다. 그 존재의 권세에 매여 살 필요가 없다. 진정한 나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활한 의인의 권세를 누리고 사는 자유인이다.

Friday, June 8, 2012

로마서 6:14-18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인간의 어떠한 결단도 죄 앞에 무력하다. 죄는 단순히 인간이 통제할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을 구속하는 권세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으면 죄에 대한 가르침은 “해라 하지 말아라” 하는 인간중심의 규범적이고 율법적인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은혜의 복음을 하나님의 능력(두나미스)이 됨을 믿지 않으면 은혜아래 있으면 죄를 더 짓게 된다는 오류에 빠지며 또다시 생명력 없는 인간중심의 율법적 신앙의 함정에 갇히게 된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너희가 이제 은혜아래 있기 때문에 더이상 죄가 너희를 지배 (dominion)하지 못한다." 은혜의 복음은 우리의 통념은 여지없이 깨뜨린다. 믿음을 통하여 선물로 받는 하나님의 의. 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고 우리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Tuesday, June 5, 2012

로마서 5:17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비밀은)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For if by the transgression of the one, death reigned through the one, much more those who receive the abundance of grace and of the gift of righteousness will reign in life through the One, Jesus Christ.

로마서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우리가 생각하고 들어왔던 메시지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나는 은혜를 말할 때 조심스러워진다. 은혜가 무절제하게 너무 많이 회자될까 봐서 살짝 걱정이신 분들도 많은 모양이다. 본문은 나와 그런 분들을 더욱 걱정스럽게 만든다. 은혜의 적절함이 아니라 은혜의 풍성함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혜는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도 자격을 갖추고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는 것이다. 적절한 수준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분에 넘치는 풍성함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비밀은 무엇인가?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것이다. 신자는 은혜와 의의 선물의 무한리필을 받고 사는 사람이다.

Saturday, June 2, 2012

로마서 4:17-25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가 가진 믿음은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가졌던 바로 그것이다. 죽은 자를 살리는 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하나님은 믿음의 커트라인을 올려서 탈락자들을 양산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너희는 스스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의 증거들을 보여라"라는 교훈을 전하는 메시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서가 전하는 은혜의 풍성함에 이르는데 결정적 방해꾼은 이런 인간들이 만들어내고 믿는 스탠다드이다. 하나님은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다. 또한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어쩔수 없이 믿어야 하는 그런 분도 아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자격없음에도 먼저) 내어 주시며 의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