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28, 2010

요한복음 3:3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인간의 종교도 선행도 지식도 철학도 그 아무리 선해보이는 것도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원하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 매몰되어 죄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축소하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을 구원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이다. 인간이 선행이 없어서 도덕이 없어서 지식이 없어서 자신의 최선의 노력이 없어서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을 인간이 구원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은 구원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구원을 받는 존재이다. 구원은 인간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임하는 것이다.

Thursday, January 21, 2010

요한복음 1:1 - 1: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말씀(The word)은 하나님께서 창조에서 역사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그 분의 권능의 행위이다. 그분의 드러내심의 절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다. 요한은 예수는 태초에 하나님과 계셨고 그 분이 하나님이라고 전한다. 요한이 전하는 예수는 하나님이시거나 아니면 광인이다. 예수는 누구인가에 대한 반응은 지금 이시간 바로 여기에서 일어난다.

Friday, January 15, 2010

그의 나라와 오후 5시 같은 인생

송병주 목사—

(중략) 유대인들의 당시 노동환경은 하루 10시간 노동이었다. (중략)오후 5시 인생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오후 5시면 누가 생각해도 포기해야 할 상황,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황이다. 모두가 떠나 버린 곳. 그런데 그 시간까지 버티고 남아 있었다면 그 사람의 심정은 어떤 심정이 그의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게 했을까? 오후 5시 같은 인생을 묵상하다가 미국 대공황 시절, 짐 브래독이라는 권투 선수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신데렐라맨>이 생각이 났다. 라이트 헤비급 권투선수 유망주였던 짐 브래독은 오른쪽 손목뼈가 골절되는 치명적인 부상으로 권투선수의 삶을 접고 부두 막노동자로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대공황이 밀려오고, 얼어붙은 겨울에 불을 피울 수 없는 극도의 가난의 현실 앞에서 감기와 폐렴에 걸린 아이들을 포기해야 할 단계까지 갔다. 자식들과 같이 살고 싶은 마음에 자존심을 접고 champion's club에 가서 모자를 벗고 동전 몇 푼이라도 부탁하는 구걸조차 마다하지 않았던 아버지, 짐 브래독. 어쩌면 이것이 바로 오후 5시까지 그곳에 남은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 인생의 전환점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 하나님은 포도원 주인처럼 끊임없이 당신의 백성을 찾고 있다. 자랑할 것 없고, 그저 부끄러움 밖에 없는 사람에게도, 절박한 심정으로 버티는 사람에도 당신의 나라는 임하신다. 하나님나라는 바로 이런 분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자신의 공로를 내세워 구원을 가르치는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주님은 통렬하게 메시지를 주셨지만, 오후 5시 인생 같은 절망의 유대 땅을 향해 예수님은 희망의 메시지를 주셨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은 시간까지 인력시장이 있는 곳이면 자기 발로 찾아오셔서, 나에게 사명을 주시고 처음 된 자와 상관없이 동일하게 채우신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

이것은 지금도 동일하다. 낙심과 절망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나의 소망이다. 어떤 상황이 와도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 "하나님이 마침표를 찍기 전까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향해 마침표를 찍지 말라." 모두가 끝장이라고 말하며, 더 이상 희망 이 없다고 말하며, 남아 있는 자존심조차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 같은 상황일 때, 그런 상황에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마침표를 찍지 않으셨는데 내가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실패도, 그 어떤 좌절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내 육신과 영혼을 할퀴고 지나갔다 할지라도, 그래서 오후 5시 같은 인생의 자리에 서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에게 그의 나라의 일꾼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중략)

오후 5시 같은 인생에게 지금도 하나님나라는 열려있다. 하나님나라는 나의 공로와 능력의 결과가 아니라, 은혜임을 지금도 예수님은 도전하고 계신다. 천국은 나의 공로로 가는 곳이 아니다. 동시에 천국은 내가 인간적으로 부족하다고 갈 수 없는 곳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다.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이다.

앞에서 말한 짐 브래독은 가정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오후 5시 같은 인생에 다시 권투선수로 재도전한다. 헤비급이라 할 수 없는 뼈가 드러나 보일 것 같은 왜소한 체구에 부러진 오른쪽 손목 부상을 안고 권투 선수로서는 할아버지라 불러도 될 나이에 다시 링 위에 섰다. "나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어"라는 독백 같은 그의 말에 오후 5시에 부름 받은 품꾼의 마음이 보인다. 그런 짐 브래독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팔아가며 그의 재기를 돕는 친구가 있었다. 모두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위해 온 힘을 다해 그를 격려하고 돕는 친구가 있었다. 그의 도움과 부두 노동자 친구들의 눈물어린 후원 속에 황혼 길에 선 노인 같은 그가 다시 링 위에 섰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그의 재기, 그러나 그는 미국 최강자들을 차례로 쓰러뜨리고 챔피언 결정전에 오른다. 이 스토리를 알기에 사람들은 짐 브래독을 <신데렐라맨>이라 불렀고, 결국 그의 가슴시린 재기는 대공황에 빠져 절망 가운데 살던 미국인들의 희망이 되었다. 결국 2명이나 링 위에서 죽게 만든 절대 강자 맥스 베어와 마지막 챔피언 결정전에서 치열한 공방을 거친 끝에 결국 15회 판정승을 거두며 온 세상을 향한 희망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오후 5시 같은 품꾼의 인생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진 일은 '절망'밖에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한 가지 더 할 일이 남았다면 지금도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다. 마지막 삶의 자리에 서 있는 지금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소망이시다.

여호수아 5:1 - 5:5

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요단 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으로 한 것은 언약백성의 외적표식인 할례를 행하는 것이었다.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민 14:34).” 요단강이 마른 것은 대적으로 부터의 승리를 의미하며, 할례를 행하는 것은 징계의 때는 끝나고 언약관계의 회복을 의미한다. 확실히 이사건은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면서 시작하신 예수님의 행하신 것들의 예고편이다. 마음에 파장이 깊게 울린다.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Wednesday, January 13, 2010

여호수아 3:11 - 3:17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로 향하여 요단강을 건널 때 이스라엘 백성을 가로막던 거대한 세력, 강물이 끊어졌다. ‘온 땅의 주’ 그리고 ‘온 땅의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소유로 그 땅은 회복되었다. 요단 강물이 물러나는 것은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할 세력이 무너질 것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다. 요단강에서 이루어진 또다는 중요한 사건은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신 사건이다. 예수님의 침례는 해수면보다 낮은 땅인 여리고의 요단강에서 행하여졌다. 침례를 받을 이유가 없으신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의 시작을 세례요한에게서 침례를 받는 것으로 시작하셨다. 인류를 위한 ‘큰’ 대제사장인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속죄의 제물로 드리는 그 분의 공생애를 시작하신 곳이다. 세상의 가장 낮은 땅으로 침례를 받으러 나아가시는 예수님... 내 주님은 그런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