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29, 2009

고린도후서 12:1 - 12:10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은 14년 전에 본 삼층천의 환상에 대해 말한다. 1절의“무익하나마”와 “부득불”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바울이 자신이 경험한 환상을 영적으로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신학적 색안경을 끼고 본문을 읽는 것이다. 본문은 환상이 영적으로 무익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환상에 대한 자랑이 무익하다는 것을 말한다 (Boasting is necessary, though it is not profitable, NASB). 이것은 영적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환상의 경험을 나누는 일은 지극히 조심스러운 일이며 나누는 것에 대해 성령님이 확신을 주실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 그런 확신이 없으면 나누지 않는 것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유익하다. 깊은 기도에서 나오는 영적신비 혹은 말씀의 깨달음이 있다면 현실의 고단한 삶의 현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현실의 고단함으로 메말라 있으면 깊은 기도의 세계로 올라가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올라가심과 내려가심>의 영성이다.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고 사명을 위해서 삶의 현장으로 내려 가셨다. 우리의 문제는 두가지 중의 하나를 무시하는 것이다.

Monday, December 14, 2009

마태복음 6:31 - 6:34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계획을 이루셨다. 그 분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며 약속대로 성령님을 보내 주셨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우리가 먼저 구하여야 할 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기도의 핵심이다. 이는 메시야가 오시기 전의 기도, 이를테면 자신의 지경을 넓혀 달라는 야베스의 기도나 아들(사무엘)을 구하는 한나의 기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기도이다. 나를 향하고 내 중심적인 기도와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기도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기도만 열심히 하면 그 간격을 성령님의 인도로 메꿔 주시겠지 하는 것은 좀 안이한 생각이다. 자신의 자아와 생각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방적 기도도 많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를 방해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라고 기르치신다. 오늘 하루 염려가 떠 오를 때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을 연습해 보아야겠다. 내 존재를 주님께 드리고 그 분의 다스리심과 그 분의 주인되심을 구하는 기도를 시작하게 된 것은 가장 배고프고 어두운 인생의 계절을 지나면서였다. 이 기도는 한가로이 드리는 형식적 기도가 아니다. 이 기도가 격식을 제대로 갖추어서 하는 기도라든지, 혹은 훌륭한 분들이나 하는 기도라는 것도 아주 심각한 오해다. 예수님이 소위 잘난 사람들에게 시키는 그런 기도가 절대로 아니다. 천국복음의 소식을 담은 기도이다. 어두운 그늘을 지날 때 은혜의 빛을 비추며, 삶의 무게로 신음할 때 상쾌한 자유함을 주는 너무나 절실한 기도이다.

Thursday, December 10, 2009

리처드 도킨스 vs. 프랜시스 콜린스

2006년 '만들어진 신'에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적 논증을 펼쳐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리처드 도킨스 영국 옥스퍼드대 뉴칼리지 교수가 신작 '지상 최대의 쇼'(김영사 펴냄)을 내놓았다. 그는 개체로서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라는 '이기적 유전자'(1976)부터 신의 존재는 인간의 망상일 뿐이라는 '만들어진 신'까지 신앙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주장으로 과학계와 종교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을 논쟁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이번 책에서는 진화론에 집중함으로써 무신론에 쐐기를 박으려 한다. 초월적인 존재, 신적 존재가 세계를 만들었다는 창조론이 잘못됐음을 진화론을 통해 방증하려는 시도로, 저자는 '울트라 다윈주의자'라는 별명에 걸맞은 논지를 펼친다. 그는 먼저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에 대응하는 이론으로 내놓은 '지적설계론(지적인 존재가 우주 만물을 완벽한 모습으로 설계했다는 이론)'을 마음껏 비웃으면서 인간과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진화론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어류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 호모 사피엔스로 가기 전에 해당하는 형태의 화석, 나무 화석 등을 단서로 제공하고 화석 증거의 시간을 측정하는 방사성 연대법이 합리적이고 정확한 방식인지 역설한다. 또, 지층의 상대적 순서와 판 구조론 등 지각 지질학을 소개하고 현생 동물들의 해부구조를 비교하는가 하면 친족관계와 계통수를 따져보고 DNA를 비교하는 분자생물학 연구 결과들을 하나씩 펼쳐보이면서 단 하나의 세포가 인간처럼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설명한다. 저자는 "인간 사육가가 고작 몇 백 년, 몇 천 년 만에 늑대를 페니키즈로, 야생 양배추를 콜리플라워로 변형시킬 수 있다면 야생 동식물의 무작위적이지 않은 생존이 수백만 년에 걸쳐 같은 일을 해내지 못하라는 법은 없지 않나?"라며 자연선택의 합리성을 옹호한다. 신랄하고 도발적인 문체는 여전하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진화론의 과학성을 설명하려는 태도와 관점이 명료하고 깔끔하다. 제목의 '지상 최대의 쇼'는 진화 자체를 말한다. 저자는 우연도, 무작위적이지도 않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직접적인 결과로 인간이 탄생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진화란 "마을(세상)의 유일한 게임, 지상 최대의 쇼"라고 표현한다. (연합뉴스)

다음에서 울트라 진화론자 도킨스와의 대화를 보시죠. 그가 신랄하고 도발적인 것은 100% 동의하지만 그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것에는 상당한 의문이 들 것입니다. 돈버는 방법도 여러가지라는 생각과 더불어 믿음 좋은 사람들이 교회나 선교에 헌신하는 것외에 과학계에도 많이 헌신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http://www.youtube.com/v/VCmj_8_6KEc&hl=ko_KR&fs=1

◇ 신의 언어/프랜시스 콜린스 지음·이창신 옮김/324쪽·1만4000원·김영사 저자는 “과학과 종교가 화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력을 보면 이런 주장이 울림을 가질 만하다. 저자는 미국 국립보건원장이다. 물리화학과 의학을 전공한 저자는 1993년부터 6개국 과학자 2000여 명과 함께한 ‘인간 게놈프로젝트’를 총지휘했다. 2003년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31억 개 유전자 서열을 모두 밝히는 게놈 지도가 완성됐다. 종교와 별로 관련이 없을 법한 저자의 세계관은 26세 때 치료 불능의 할머니 환자를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저자에게 “왜 신을 믿지 않느냐”고 물었다. 저자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대답했지만 ‘과학자가 자료 검토도 없이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는 자각에 이른다. 해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책에 매달렸다. 그는 바빌로니아의 사모스 찬송, 고대 인도의 마누법전, 플라톤 학파까지 한결같은 목소리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도덕법을 강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양심과 이타심으로 대표되는 도덕법이 오직 인간의 내면에만 있다는 것은 저자가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 사심 없는 이타주의는 진화론자에게 가장 큰 과제라고 저자는 말했다. 저자는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자에게 간접적으로 종족 번식의 이익이 돌아간다는 점을 들어 이타주의를 설명하지만 이 주장은 한계에 부딪힌다”고 말했다. “영장류를 보면 이 주장은 맞지 않는다. 가령 새로 우두머리가 된 수컷 원숭이는 훗날 생길 자기 새끼의 앞날을 위해 다른 새끼들을 제거한다.” 저자는 과학자답게 과학의 성과들을 통해 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빅뱅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의 기원에는 몇 가지 놀라운 우연이 존재한다. 대폭발 직후 1000분의 1초 동안 물질과 반물질이 비대칭을 이뤄 우주의 질량이 생긴 것, 초신성 폭발로 중원소가 생길 때 양성자와 중성자를 묶는 강한 핵력이 조금만 약했어도 우주에는 오직 수소만 존재했을 것이라는 게 대표적이다. 스티븐 호킹은 “우주가 왜 꼭 이런 식으로 시작됐어야 했는지, 우리 같은 인간을 탄생시키려는 신의 의도적인 행위로밖에는 달리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놈 연구를 통해 저자는 인간과 다른 생물의 조상이 같다는 냉혹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인간과 생쥐의 게놈 크기는 거의 똑같고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자 목록도 놀랄 만큼 비슷하다. 인간이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으로만 진화했으며 신이 끼어들 영역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DNA 서열에 비록 생물학적 기능에 관한 방대한 자료가 담겼다 해도 그 서열만으로는 도덕법에 대한 지식과 같은 인간만의 특성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진화론, 창조론의 양 극단을 극복하는 ‘바이오로고스(Biologos)’란 개념을 소개한다. 바이오로고스는 신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생명은 신의 의지를 표현한다는 믿음이다. 이 개념은 자연계를 이해하면서 생기는 틈에 신을 끼워 넣지 않는다. 다만 ‘우주가 어떻게 생기게 됐을까’처럼 과학이 대답하지 않는 문제에 대답할 때 신을 끌어들일 뿐이다. 책의 끝부분에 저자는 종교인들에게 부탁한다. “종교인들은 코페르니쿠스의 권고에 따라야 한다. 그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신의 장엄함을 깎아내리기는커녕 되레 축하할 기회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신에게 감사를 표현할 때 무식이 유식보다 더 위에 있을 수 없다.” 또 과학자들에게 부탁한다. “과학과 영적 세계 사이에서 점점 고조되는 전쟁에 휴전을 선포할 때다. 과학은 신에 위협받지 않는다. 신도 결코 과학에 위협받지 않는다. 신은 과학을 가능케 했다.” 동아일보 민병선 기자

Saturday, December 5, 2009

다윈이즘 vs 지적설계

다윈은 수많은 연속적인 작은 수정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복잡한 구조가 존재한다면 종의 기원에 관한 자신의 가설은 깨진다고 말했다. 사실상 종내의 범위에서 변위들은 관찰된다 (within a particular species, not from a particular species to a new species). 지적설계이론은 연속적인 수정에도 생길 수 없는 복잡한 구조에 관한 가능성을 연구한다. 만일 이런 가능성이 사실이라면 종의 기원에 관한 다윈의 소위 grand theory는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아래의 <추방> 이라는 영화의 주요장면을 보세요. 지적설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 대한 다윈을 신봉하는 그 잘난 과학자들의 반응이 얼마나 치졸하고 학문의 자유를 방해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http://www.intelligentdesign.or.kr/expelled

Wednesday, December 2, 2009

창세기 22:1 - 22:8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번제를 드릴 모리아 땅. 훗날 성전이 건립될 곳이며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곳이었다. 이삭을 대신해 번제로 드려진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 예수님을 예표한다. 그 날 아브라함은 분명 아들을 죽여 번제로 드리기 위해 그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그 날 자신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드렸다. 사람들의 눈으로 보거나 이성의 관점으로 보면 한마디로 미친 짓을 기꺼이 감당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에게나 부끄럽거나 꺼리낌이 없었다. 죽은 것과 같은 자신의 몸에서 이삭을 주시는 하나님(롬 4:19-22). 죽은 자 가운데서 능히 (이삭을)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히 11:19). 그가 믿는 하나님은 그리고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Tuesday, December 1, 2009

창세기 12:1 - 12:4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12월이다. 2009년도 이제 한달을 앞 둔 오늘 아침에 주신 말씀은 "떠나서 가라"이다. 아브람의 나이 75세는 당시 사람들의 수명을 고려하여 요즘 나이로 환산하면 대략 40대의 중년기라고 한다. 중년기는 이미 익숙해진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를 기피하는 그런 때이다. 떠나지 못할 이유들이 너무 많은 그런 때이다. 지금까지 받아오던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영적 영향력에서 떠나는 것으로 아브람의 믿음의 순례는 시작된다. 이 땅을 딛고 사는 사람들에게 떠남은 단순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떠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리적이고 물리적인 그런 구체적인 떠남을 포함한다. 고국을 떠나 온 십수년 동안 그리고 유학생들과 성경공부를 시작한 때로부터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었다. 나는 주로 남아 있는 자였고 다른 사람을 떠나 보내는 입장이었다. 그 중에 여럿은 천국으로 떠나 보냈다. 타지로 보내든 천국으로 보내든 가슴 속에서 서늘하게 흘러 내리던 눈물과 울분은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나도 이제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겠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벌려 놓은 일들과 살림가지들을 단촐하게 줄여야 겠다. 부르시면 핑계될 이유가 없이 기쁘게 순례의 길을 떠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