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잡동사니를 제거하라. 주변에 고통스러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있다면 결별하라.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고통스러움을 유발하는 것이 있다면 가능한 한 그것과도 결별하라. - 뤼디거 샤헤의《마음의 자석》중에서 -*
삶의 잡동사니가 참 많습니다.스스로 고통을 만들어 끌어안고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단호하고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하는데 미적대면서끝내 결별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것입니다.내려놓을 것은 얼른 내려놓아야 합니다.내려놓아야 가벼워집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할일이 있어 연구실에 나왔는데 어째 주변이들이 저의 잠들어 있는 부분들을 다시금 들춰내며 참아내지 못하고 성깔을 부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ReplyDelete왜 저들은 저렇게 밖에 못사는걸까, 왜 자꾸 성깔 부리며 잔소리하게 만드는 것일까...
한동안 잘 참았는데 다시금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함께 지낸다는것은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저를 죽이게 만듭니다. 참 많이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런 어느 순간 포기했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불쑥 알수없는 모양새로... 저 안에 웅크리고 있던 작은 악마가 유감없이 또아리를 틀면서 흉측한 모습으로 드러날 때... 잠시 저 자신을 주체하기가 버거워 질때가 있습니다.
속히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저들에게 묶인 나의 매임을 속히 끊고 자유할 수 있을테니깐요... 그래야 제가 숨쉴수 있으니깐요...
관련이 있는 글을 하나 더 올립니다.
ReplyDelete만약 당신에게 말기 암이 진단되고 앞으로 6개월밖에 살지 못할 판정을 받는다면 당신의 첫 반응은 무엇일까? 실제가 아니라 가정해 보는 것이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시라. 시카고 대학교 정신과의 퀴블로 로스 교수는 임종을 맞는 암환자의 5단계를 책으로 낸 적이 있다.
첫 단계는 부정이다. '나처럼 건강하게 살아온 사람이 그런 몹쓸 병에 걸린다는 건 말도 안 돼'. 그 사람은 부지런히 다른 병원을 찾아다닌다. 그 단계가 끝나면 두 번째는 분노의 단계. '왜 하필 내가.... 난 이제까지 착하게 살아온 사람이 아닌가?' 세번째는 타협의 단계. 이때 그 사람은 신앙적이 된다. 평소에 찾지 않던 기도원을 찾는다. 네 번째 단계는 우울. 병에서 낫기 위해 몸부림을 쳐보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는다. 점점 우울해진다. 마지막 단계는 수용단계다. 감정적으로 차분해 진다. 죽음을 수용하면서 임종 준비를 하게 된다. 가능하면 각 단계가 짧을수록 좋다. 어차피 들어갈 죽음의 세계를 좀더 여유 있게 준비하며 이생의 삶을 깨끗이 마무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은 정상적인 삶에 갑자기 들이닥친 하나의 공격이다. 공격에 대한 방어는 인간의 자연스런 반응이다. 프로이드는 자아에게 닥쳐오는 위험이나 위협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하여 연구했다. 보통 현실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겠지만 이것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현실을 왜곡, 위장, 부인함으로써 소위 '방어기제'를 발동한다. 그 중 가장 흔한 것이 '부정 Denial'이다. 911사태로 아들이 죽었다. 그러나 엄마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현실을 부정한다. 수년이 지났어도 아들의 방을 청소하고 곧 돌아올 아들을 기다린다. 또 흔히 사용되는 방어기제가 '투사 projection'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 '똥싼 놈이 방귀뀐 놈 나무란다'는 속담이 전형적인 투사다. 이밖에도 합리화, 억압, 전치, 약물중독 등의 방법으로 자기 방어를 한다. 서울역의 홈리스들에겐 여기저기서 식사가 제공된다. 담요와 속옷이 공급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아침부터 '쏘주'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미국도, 한국도 많은 홈리스들이 알콜 중독에 빠져있다. 그 순간만이라도 고통에서 떠나고 싶다는 것. 이해는 되지만....
어느 정도 방어기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다. 방어기제의 발동은 고통 상황에서 자신을 부정적으로 방어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엄청난 심리적 에너지가 방출된다. 여기에 묶여 있으면 자아는 더 이상 성숙하게 발전되지 못한다. 신경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고난의 공격은 아프다. 때때로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칼을 뽑아 자신 방어에만 몰두한다면 자신도, 상대방도 아무런 득이 없다.
한 밤에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 유다가 병정들을 이끌고 스승을 잡으러 온다. 그때 제자 베드로가 칼을 들고 용감하게 스승을 방어하려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검을 집에 꽂으라" 사실 예수님으로써는 얼마나 억울한 상황인가.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가 자기에게 입을 맞추며 자신을 잡으러 왔으니 이런 배반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방어하지 않았다. 문제의 해결이 칼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방어에 급급한 정치가들의 모습은 볼쌍 사납다. 자기 방어에만 몰두하는 학생들은 더 이상 학습에 매달릴 수 없다. 자기 방어에 능통한 배우자는 자신의 배우자를 깊이 이해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고통의 상황에서 자기 방어를 풀고 그 에너지를 밖이 아니라 내면으로 돌리는 법을 배우면 자기 성숙이 일어난다. 자기 초월의 경험에 도달할 수 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56세의 헨델은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 동안 오페라를 작곡하고 극장을 운영해 오면서 많은 명성과 돈을 벌었지만 파산을 해 버린 것. 자기를 총애하던 왕은 더 이상 후원을 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병까지 얻었다. 이 지경에 이르니 쉴새없이 드나들던 친구, 친척들이 나 몰라라 한다. 죽어가던 헨델에게 한 대본이 펼쳐진다. 젠넨이 쓴 '메시야'. 그는 대본을 읽어 내려가는 사이에 새로운 힘을 얻는다. 일어나 초인적인 능력으로 작곡에 매달린다. 44일만에 3부작 대 오라토리아를 완성한다. 이 일로 헨델은 다시 재기한다. 그리고 20여 년을 더 살며 주옥같은 곡을 남기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된다.
당신의 칼은 지금 누구를 겨누고 있는가? 그 에너지를 어디로 돌릴 수 있는가?
아멘넷-최혁 씀
한국을 가는 동안 정말 '아무 계획도 없이 탱자탱자 놀자'가 나의 계획이라면 계획이었습니다.
ReplyDelete하루하루 빠듯한 스케줄 속에 매여 있다보니......정말로 무계획이야말로 최고의 휴가다 하고 말이죠.
밤늦게까지 텔레비젼보고 책보다 자고 강아지랑 대책없이 놀고 맞선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걸입을까 저걸 압을까 고민도 하고 찜질방가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그래도 하루가 다가고 나면 "오늘 잘 쉬었다!"가 아니라 "어머 오늘 하루 한것이 아무것도 없네"하고 후회를 하게 되니... 항상 무언가 생산적인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나의 강박관념.....
내게 주어진 한끼 한끼의 일용한 양식을 취하듯,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하나님이 주신 선물처럼 살수 있다면.....
생산적인 무언가에 마음이 매이지 않고 언젠가는 "아! 오늘 참 잘 보냈네!" 하는 그 편안함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으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