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12, 2013

심각한 오해

Amiable agnostics will talk cheerfully about man's search for God. For me, they might as well talk about the mouse's search for a cat... C. S. LEWIS

인간이 신으로 향해 나아가는 것은 종교다. 인간의 어떠한 의로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다. 결과는 노예적 삶, 정죄함과 죽음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로 오신 것이 복음이다. 아담 (인간)의 죄보다도 예수님의 redemption 은 훨씬 더 위대하다. 결과는 자유함, 죄사함과 영생이다. 복음에 대한 혼동이 가져오는 증상은 가시적이고 행위적 의에 모든 자원을 소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Wednesday, September 4, 2013

복음적 삶이란

(베전 2: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복음적 삶이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을 선물로 받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Tuesday, August 13, 2013

날마다 들어야 하는 복음

오늘날 특히 미국에서 가장 신세대인 밀레니엄 세대가 왜 교회를 떠나고 있을까? ..."우리는 교회 안에 ‘쿨’한 팩터가 없어서 교회를 떠나는게 아니라 예수님을 찾지 못하기에 떠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전후 세대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동경한다. 이 성향은 밀레니엄 뿐 아니라 다른 세대의 많은 사람들에게서도 진실일 것이다."-크리스찬투데이

오늘 신문에 난 기사이다. "예수는 우리의 죄가 되었고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날마다 들어야 하는 복음이다. 문제의 뿌리는 다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믿지 않기에, 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며, 그 결과로 다른 유행에 민감한 것들에 끊임없이 매달리는 것이다.

Tuesday, June 11, 2013

겸손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베드로전서 5:5-7)

겸손은 주님의 능하신 손에 우리를 맡기는 것이다. 은혜 아래의 삶은 겸손을 유지하고 염려하지 않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Thursday, May 16, 2013

우리의 질병을 지고 우리의 고통을 당하였거늘

(이사야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KJV Isaiah 53:4) Surely he hath borne our griefs, and carried our sorrows

마태는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직접 보고, 이사야 53 장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성취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 8:17).” 이 마태의 기록이 구약의 기록과 다른 것 같지만 히브리 원래 뜻에 부합한다. Strong’s Lexicon 을 보면 구약에서 질고와 슬픔으로 번역된 히브리 말과 뜻은 다음과 같다.

חֳלִי (khol•ē'): sickness
מַכְאֹב (mak•ōve'): pain, sorrow

그래서 이사야 53장 4 절을 그대로 번역하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병을 지고 우리의 고통을 당하였거늘" 이 된다.

Friday, May 10, 2013

트윗레스

오늘 트위트 계정을 중단했다. 예전에 매일같이 묵상한 말씀을 올리곤 했는데... 인터넷에 주인없는 account가 너무 많다는 기사를 읽고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었다. 오랜동안 입지 않던 장농 깊숙히 넣어 두었던 겨울 옷을 정리한 기분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런 것부터 정리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Monday, May 6, 2013

골결정력 부족

흔히 한국축구의 문제점을 ‘골결정력 부족’이라고 한다. 사실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증상이지 문제의 뿌리가 아니다. 문제는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적, 개인적 신념에 있다. 자신의 존재의 값어치가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믿는 그런 신념체계가 오랜동안 몸에 배어있기 때문에 선수들은 엄청난 부담을 진다. 자신의 발끝에 경기의 승부가 갈라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기말시험결과를 학생들에게 통보하면 의례 몇몇 학생들이 찾아오거나 이메일을 보낸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시간을 투자했는데 성적이 안좋게 나왔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위로한다. 이번에 부족했던 것을 보충하기 위해 다음에는 더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만일 이런 학생들이 다음 기말시험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나, 그런 학생들이 지게될 심리적 부채는 어떻게 해소되나 딱한 마음이 든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자신을 증명해 보이는 삶이 다름아닌 율법아래의 삶이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율법은 한치의 양보와 타협이 없는 완전무결함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선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 잠시 마음의 위안을 주는 것 같지만 내면의 깊은 곳에서는 신음과 정죄감이 견고한 진을 치게 된다. 골 결정력을 높이는 비밀은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이 무한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지론 저지론

(막 1: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요단강으로 가셔서 세례를 받으신 분. 이스라엘의 가장 높은 곳, 변화산 (헐몬산) 에서의 영광스런 모습을 나타내신 분. 그 분은 언제나 같으신 분이시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이런 분이다. 고지론이니 저지론이니 하는 것으로 제한되지 않으시는 분이다.

Wednesday, May 1, 2013

나를 먹이는 말씀은

"우리의 설교가 목회적 필요에 끌려 다니다보면 성경의 뜻을 풀어 진지하게 석의하고 강해하기보다 성경을 인용만하고 설교자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로서만 남용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오늘 아침 교계신문에 난 이동원 목사님의 강연내용에 관한 기사이다. 교회를 출석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교회의 분쟁도 아니고 사람들과의 갈등도 아니었다. 설교의 중심을 목회적 필요가 차지할 때였다. 배가 고팠다. 정확히 말하면 불량식품을 먹을 때처럼 배가 부글거렸다. 나를 살리고 먹이는 말씀은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 혹은 랍비로서의 예수가 아니다. 생명의 떡으로서 오신 주님이다.

Saturday, March 30, 2013

부활: 의인됨의 확실한 보증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죄에 대한 부채 (죽음)가 더이상 남아있지 않으며 그것이 완전히 청산되었음을 의미한다. 부활은 우리의 의인됨의 가장 확실한 보증이다.

Friday, March 29, 20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눅 5: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문둥병이 곧 떠나니라.

(마 14:36) 다만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막 5: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깨끗하게 사는 방법은 세상과 거리를 유지하고 때묻히지 말고 사는 것이다. 까딱 잘못하면 세상이 우리를 더럽힐지 모르니 항상 살피고 경계하며 조심스레 살아가야 한다. 교회가 이런저런 일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여지없이 이런 류의 메시지도 더불어 인기를 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세상을 사랑하신 분이다. 은혜의 빛 아래 살아가는 신자는 세상으로부터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 노심초사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받는 하나님의 의는 세상에 의해 더럽혀지고 손상되는 그런 허약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세상을 깨끗게 하고 치유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Monday, March 18, 2013

로마서 6:11

(로마서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Likewise reckon ye also yourselves to be dead indeed unto sin, but alive unto God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여기서 “죽은 자로 혹은 살아 있는 자로 여기라”는 말은 뭔가 찜찜한 면이 있다. NIV에서 consider로 KJV에서 reckon으로 번역된 이 단어는헬라어로 λογίζομαι (lo-gē'-zo-mī 로기조마이) 이다. Strong’s lexicon에서는 이런 설명을 부가하고 있다.

λογίζομαι : This word deals with reality. If I reckon (logizomai) that my bank book has $25 in it, it has $25 in it. Otherwise I am deceiving myself. This word refers more to fact than supposition or opinion.

이 단어는 심리적 용어가 아니다. 회계장부에서 빚이 있다면 있는 것이고 빚이 청산되었다고 하면 빚이 없는 것이다. 너무나 확실하고 현실적인 용어이다. 우리의 빚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깨끗하게 청산되었다. 신자는 죄에 대한 빚이 완전히 청산된 살아 있는 자이다.

Monday, March 4, 2013

나무를 심는 사람

http://www.youtube.com/watch?v=OwT3fEp0tUE

헛슨강변에서의 기도

오늘 중앙일보에 뉴욕한인교회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파란색 정문바로 옆에 있는 예배당에서 기타를 치며 찬양도 하고 토요일 저녁마다 기도모임도 했었다. 바로 아래의 지하에서 성경공부도 하고 그 옆 부억에서 밥도 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어느 주일에는 전교인을 대상으로 점심준비를 하느라 엄청난 양의 국수를 삶은 적도 있다. 안익태 선생이 쳤다는 피아노는 키보드 한쪽이 없었던 기억도 있다. 교회 앞의 길을 따라 내려가면 허드슨 강변의 리버사이드 공원이 있고 그 강변의 길을 따라서 아내와 데이트도 하고 운동도 했었다. 당시 교회는 양쪽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이었다. 다들 인간적으로는 좋으신 분들이었는데... 예수님보다는 예수운동이 우리의 관심이 되면 늘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출처: 중앙일보 3월 4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10832939) "일제강점기에 미 동부지역 독립운동의 산실 역할을 했던 건물이 한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뉴욕한인교회’다. 이 교회는 3·1운동 2주년 기념으로 1921년 3월 2일 서재필 박사가 주도해 1300여 명의 한인동포와 친한파 미국인이 모여 연 ‘한인연합대회’에서 탄생했다. 두 차례 거처를 옮긴 끝에 1927년 조병옥·이용설 등이 주도해 현재의 건물을 사들여 입주했다. 이후 서재필·이승만·안익태·조병옥·김활란 등 수많은 애국지사가 이곳에 기숙하거나 거쳐가며 독립운동의 산실이 됐다. 이 교회 이용보 담임목사는 “당시 컬럼비아대에 다녔던 한인 유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교회에 모여 일제 식민의 울분을 토로하면서 동부지역 독립운동가의 거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Tuesday, February 5, 2013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은 우리를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복음의 실체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실체는 인간의 선행이나 거룩이 아니고 천국이나 지옥도 아니며 바로 ‘구속’입니다. 현재 복음 사역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구속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주의 사역자로서 우리는 구속만이 유일한 실체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거룩은 우리 안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구속의 결과로 나타나는 인간의 선함에 둔다면, 시험이 올 때 그 믿음은 무너집니다. 바울은 자신이 스스로 구별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성품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한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깨끗함에만 신경을 쓰는 자는 결코 구속의 실체에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사역자들이 실패해서 쓰러지는 이유는 그들의 관심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자신의 의로움을 보이려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나 자신의 성품 개발에만 관심이 있는 한,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 구별된 바울은, 자신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이 목적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글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지난날 배우고 듣고 알고 있었던 것들에서 심각한 오류를 발견한다. 이런 것들을 지우고 새로운 발견을 하고 있는 중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은 거룩이 결코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거룩을 위해 힘쓰는 삶은 저주 아래에 있는 삶이다. 그는 불행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의 꿈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항상 부끄러운 존재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거룩은 우리가 이루기 위해 억지스럽게 추구해야 할 성취의 대상이 아니다. 은혜의 복음의 빛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런 열매이며 결과이다. 이런 자연스러움이 진정한 거룩이다. 그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샬롬이 된다. 억지스러움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외식하는 삶에 가까운 것이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목회자들이 ‘신앙의 실천 부족’을 꼽았다."

오늘 아침 교계신문에 난 기사이다. 눈에 보이는 문제를 논하기 전에 '신앙의 실천 부족' 그 문제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훨씬 더 중요한데...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Monday, January 21, 2013

플루후기

요 몇일 몸이 많이 아팠다. 미국에 출장을 다녀오고 바로 시작된 새학기 강의를 마치고 나서 목이 아프더니 결국은 고열과 두통으로 이어졌다. 출근도 못하고 누워 있는데 두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엄마 생각을 하면서, 의학박사도 아니고 약학박사도 아닌 시골의 이름없는 약방 주인이 지어준 약은 신통하게 잘 들었나 생각을 해 보았다. 인간이 만드는 첨단기술로 따라올 수 없는 따듯한 말 한마디, 마음을 담아 쓰다듬어 주는 손길, 그런 사랑에 대한 절대적 신뢰 이것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닐까?

고열이 나면서 식은 땀을 많이 흘렸다. 샤워를 하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나는 의식이 희미해지는 경계선에서 자신을 지탱하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나의 의식이 또렸해지고 열도 내리고 회복단계로 접어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동안 달고 다녔던 불순물들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침 등교길이 아프기 전보다 더 깨끗해진 것 같다.

Saturday, January 19, 2013

어느 교회를 섬기고 계십니까?

어느 교회를 섬기고 계십니까?

많이 받는 질문이다. 신앙의 색깔을 슬쩍 떠보는 속셈도 있는 같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말하자면, 보수적인 교회에서 출발해서 진보적 교회, 한국에 있는 교회에서 해외에 있는 한인교회, 그리고 해외의 로컬교회까지 두루 출석해오고 있다. 질문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이런 질문에 열정을 토해내지 않는다. 얘기하듯 무덤덤하게 넘겨 버린다. 목사님의 설교가 어떻고 제자공부와 소그룹이 어떠하고 차세대 리더를 세워나가는 것이 어떠하다 등의 얘기를 쏟아내며 비판과 걱정들을 하시는 것을 본다.

주로 사역적인 측면에서다. 시간을 만나도 주님보다는 사역이 이야기의 주제가 된다이런 결심(?) 해본다.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예수님 얘기를 많이 해야겠다.

Kingdom 이전에 King 이 더 본질적 관심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