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11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방해꾼들은 비웃음, 업신여김의 수준을 넘어 이제는 살인의 협박까지 하면서 느헤미야를 조여온다. 유다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지치고 그들의 협박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비웃고 업신여기고 겁박하는 이유는 적들이 그만큼 우리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로 싸움은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면 된다. 하나님! 오늘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을 발걸음을 옮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믿음을 더하사 주님의 역사를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Friday, July 31, 2009
Thursday, July 30, 2009
느헤미야 2:11 - 2:20
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19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성의 재건을 구체적으로 시작한다. 느헤미야는 현장에 나가 상황을 점검하고 사람들의 협조도 얻어낸다. 그러나 이를 업신여기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방인 출신인 산발랏, 도비야, 게셈들이다. 하나님의 선한 일에는 언제나 업신여기고 비웃는 사람들의 방해가 있다. 느헤미야에게 두가지 태도를 배운다. 첫째,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한다는 분명한 확신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둘째, 느헤미야의 헌신이다. 그들의 방해가 있더라도 하나님의 선한 일을 “그의 종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겠다”고 선포하고 그 일에 헌신한다. 주님. 느헤미야의 이런 확신과 헌신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우리를 고치소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성의 재건을 구체적으로 시작한다. 느헤미야는 현장에 나가 상황을 점검하고 사람들의 협조도 얻어낸다. 그러나 이를 업신여기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방인 출신인 산발랏, 도비야, 게셈들이다. 하나님의 선한 일에는 언제나 업신여기고 비웃는 사람들의 방해가 있다. 느헤미야에게 두가지 태도를 배운다. 첫째,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한다는 분명한 확신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둘째, 느헤미야의 헌신이다. 그들의 방해가 있더라도 하나님의 선한 일을 “그의 종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겠다”고 선포하고 그 일에 헌신한다. 주님. 느헤미야의 이런 확신과 헌신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우리를 고치소서.
Monday, July 27, 2009
느헤미야 1:1 - 1:11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느헤미야는 에스라, 에스더 등과 같이 바벨론 포로 후기 생활과 포로귀환에 대해서,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의 유다 땅으로의 3차 귀환과 예루살렘 성벽 중건의 역사를 다룬다. 예루살렘에서는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에 의해 성전 건축이 시작되고 몇십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완공이 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아직 성벽이 없어 귀향한 자기 백성들이 큰 환난과 능욕을 받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한다. 시대와 사람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슬퍼하는 느헤미야의 애통함... 온갖 훈련프로그램으로 두뇌만 거룩한 사람은 이런 중보자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의 헌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 주여 오늘도 이런 슬픔을 가진 종들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소서!
느헤미야는 에스라, 에스더 등과 같이 바벨론 포로 후기 생활과 포로귀환에 대해서,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의 유다 땅으로의 3차 귀환과 예루살렘 성벽 중건의 역사를 다룬다. 예루살렘에서는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에 의해 성전 건축이 시작되고 몇십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완공이 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아직 성벽이 없어 귀향한 자기 백성들이 큰 환난과 능욕을 받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한다. 시대와 사람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슬퍼하는 느헤미야의 애통함... 온갖 훈련프로그램으로 두뇌만 거룩한 사람은 이런 중보자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의 헌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 주여 오늘도 이런 슬픔을 가진 종들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소서!
Saturday, July 25, 2009
QT-시편 33
1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18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19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시편 33)
우리가 신앙생활 잘 한다고 뭔가 떳떳한 것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당대의 의인이라 불렸던 믿음의 선진들도 그들이 좀 훌륭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았기에 의인으로 불린 것이 아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여기셨다. 우리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회복된 관계에 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살피시며 건지시며 살리시는 분이심을 계시하신 하나님... 내 영혼아 그의 인자와 긍휼이 영원하심을 찬양하라.
우리가 신앙생활 잘 한다고 뭔가 떳떳한 것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당대의 의인이라 불렸던 믿음의 선진들도 그들이 좀 훌륭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았기에 의인으로 불린 것이 아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여기셨다. 우리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회복된 관계에 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살피시며 건지시며 살리시는 분이심을 계시하신 하나님... 내 영혼아 그의 인자와 긍휼이 영원하심을 찬양하라.
Friday, July 24, 2009
QT-고전 9:23 - 9:27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운동선수들이 메달을 따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다. 첫째, 절제해야 한다. 둘째, 방향이 올바르고 분명해야 한다. 셋째, 집중하여 힘의 낭비를 줄여야 한다. 영적훈련도 다르지 않다. 절제하지 않으면 중독된다. 내 몸을 쳐서 복종하는 삶, 절제하는 삶이고 기도하는 삶이다. 오늘도 말씀하신다. 절제하고 기도해야 이긴다.
운동선수들이 메달을 따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다. 첫째, 절제해야 한다. 둘째, 방향이 올바르고 분명해야 한다. 셋째, 집중하여 힘의 낭비를 줄여야 한다. 영적훈련도 다르지 않다. 절제하지 않으면 중독된다. 내 몸을 쳐서 복종하는 삶, 절제하는 삶이고 기도하는 삶이다. 오늘도 말씀하신다. 절제하고 기도해야 이긴다.
Thursday, July 23, 2009
QT-고전9:13 - 9:22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바울은 다문화 선교의 원조다. 그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문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했다. 초기의 기독교가 유대교와 다르게 인식되지 않던 시기에 이런 그의 모습은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영혼구원에 있었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면 전통, 건물, 종교적인 틀만 남는다. 과거의 movement 를 추억하며 monument를 남기고 조용히 사라진다. 인도네시안들에게 인도네시안이 된것 같이, 싱가폴 사람들에게 싱가포리안이 된것 같이... 이는 결코 쉽지 않다. 내 안에 그리스도 (the anointed one)가 부어지지 않으면... 자유인과 종,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 진정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바울은 다문화 선교의 원조다. 그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문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했다. 초기의 기독교가 유대교와 다르게 인식되지 않던 시기에 이런 그의 모습은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영혼구원에 있었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면 전통, 건물, 종교적인 틀만 남는다. 과거의 movement 를 추억하며 monument를 남기고 조용히 사라진다. 인도네시안들에게 인도네시안이 된것 같이, 싱가폴 사람들에게 싱가포리안이 된것 같이... 이는 결코 쉽지 않다. 내 안에 그리스도 (the anointed one)가 부어지지 않으면... 자유인과 종,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 진정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Wednesday, July 22, 2009
QT- 고전 9:1 - 9:12
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권이 없기에 보수를 받지 못한다는 비판에 대해 군인이나 농부나 목자 등이 그 일에서 보수를 받게 된다는 예를 들어 항변한다. 그리고 복음전도가 금전적 이익 때문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자비량으로 비용을 자체 조달하였음을 강조하다. 바울도 인간이었다. 잘먹고 잘살고 싶은 욕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또 남자였다. 결혼해서 게바 (베드로)처럼 부부동반으로 전도여행을 다닐 수도 있었다 (바울이 결혼을 한 적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 권리를 쓰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전도자라도 부활한 예수님을 목격한 사도라도 사람들의 비판은 피할 수 없는가 보다. 인생의 주인 되신 분을 위해 참고 쓰지 않는 권리.... 믿는 자들의 능력의 비밀이 여기에 있음을 알게 된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권이 없기에 보수를 받지 못한다는 비판에 대해 군인이나 농부나 목자 등이 그 일에서 보수를 받게 된다는 예를 들어 항변한다. 그리고 복음전도가 금전적 이익 때문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자비량으로 비용을 자체 조달하였음을 강조하다. 바울도 인간이었다. 잘먹고 잘살고 싶은 욕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또 남자였다. 결혼해서 게바 (베드로)처럼 부부동반으로 전도여행을 다닐 수도 있었다 (바울이 결혼을 한 적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 권리를 쓰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전도자라도 부활한 예수님을 목격한 사도라도 사람들의 비판은 피할 수 없는가 보다. 인생의 주인 되신 분을 위해 참고 쓰지 않는 권리.... 믿는 자들의 능력의 비밀이 여기에 있음을 알게 된다.
Tuesday, July 21, 2009
QT-고전 8:1 - 8:13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사람들은 저주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상을 섬긴다. 그러나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만물은 하나님 아버지의 창조물이고 경배의 대상이 아니다. 경배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지식이다. 본문은 이 지식을 가진 자는 믿음이 약한 자들을 위해 사랑으로 덕을 세우라고 한다. 이것은 믿음의 윤리적 측면이다. 믿음으로 얻은 자유함으로 윤리적 측면을 무시한다면 교만의 위험에 빠진다. 우리는 지식과 자유는 넘치지만 윤리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희박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의 익명성이 무섭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곳도 다르지 않다. 다들 일리 있는 얘기들을 하는 것 같은데 기본예의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늘은 말을 좀 줄여야겠다. 덕을 세우는 말과 미소를 던지는 것 외에는 고요하게 지내는 것도 좋은 영적훈련이 될 것 같다.
사람들은 저주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상을 섬긴다. 그러나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만물은 하나님 아버지의 창조물이고 경배의 대상이 아니다. 경배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지식이다. 본문은 이 지식을 가진 자는 믿음이 약한 자들을 위해 사랑으로 덕을 세우라고 한다. 이것은 믿음의 윤리적 측면이다. 믿음으로 얻은 자유함으로 윤리적 측면을 무시한다면 교만의 위험에 빠진다. 우리는 지식과 자유는 넘치지만 윤리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희박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의 익명성이 무섭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곳도 다르지 않다. 다들 일리 있는 얘기들을 하는 것 같은데 기본예의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늘은 말을 좀 줄여야겠다. 덕을 세우는 말과 미소를 던지는 것 외에는 고요하게 지내는 것도 좋은 영적훈련이 될 것 같다.
Monday, July 20, 2009
QT-고전 7:29 - 7:40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늘 초대교회를 교회의 모본으로 삼고 있지만 빠뜨리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가 그들처럼 경건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그들은 곧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았다. 우리에게 곧 오실 주님은 교리에만 있는 실재 삶과는 거리감이 있다. 어제 아내가 물었다. 당신은 정말 통일이 되기를 원해?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인데 무슨 이런 질문을 하는가? 질문을 바꾸어서 이렇게 물어본다. 정말 주님이 지금 오시기를 원하는가? 지금은 저희들이 좀 바쁘니까 다음에 시간날 때 꼭 전화하시고 오세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심정은 아닌가? 경건은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사는 단순한 삶에서 나온다.
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눈높이식 맞춤 (customized) 교육이 얼마나 필요한지 실감한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도 "아다리" (일본말로 아타리?) 가 맞지 않으면 그냥 흘려 보내 버리기 때문이다. 교육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입장으로 내려가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지만 그들을 끌어 올려야 한다. 이것이 가르치는 사람의 어려움이다. 오늘의 부담스런 본문을 통해서 주님을 위해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나를 발견한다. 나를 가르치시기 힘드시겠다는 생각에 성령님께 죄송하다.
우리가 늘 초대교회를 교회의 모본으로 삼고 있지만 빠뜨리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가 그들처럼 경건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그들은 곧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았다. 우리에게 곧 오실 주님은 교리에만 있는 실재 삶과는 거리감이 있다. 어제 아내가 물었다. 당신은 정말 통일이 되기를 원해?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인데 무슨 이런 질문을 하는가? 질문을 바꾸어서 이렇게 물어본다. 정말 주님이 지금 오시기를 원하는가? 지금은 저희들이 좀 바쁘니까 다음에 시간날 때 꼭 전화하시고 오세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심정은 아닌가? 경건은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사는 단순한 삶에서 나온다.
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눈높이식 맞춤 (customized) 교육이 얼마나 필요한지 실감한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도 "아다리" (일본말로 아타리?) 가 맞지 않으면 그냥 흘려 보내 버리기 때문이다. 교육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입장으로 내려가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지만 그들을 끌어 올려야 한다. 이것이 가르치는 사람의 어려움이다. 오늘의 부담스런 본문을 통해서 주님을 위해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나를 발견한다. 나를 가르치시기 힘드시겠다는 생각에 성령님께 죄송하다.
Friday, July 17, 2009
QT-고전 7:17 - 7:28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21 Were you a slave when you were called? Don't let it trouble you--although if you can gain your freedom, do so. 22 For he who was a slave when he was called by the Lord is the Lord's freedman; similarly, he who was a free man when he was called is Christ's slave. 23 You were bought at a price; do not become slaves of men. 24 Brothers, each man, as responsible to God, should remain in the situation God called him to.
일상의 삶에서 사회적 신분이 너무 중요하다. 자신을 소개할 때도 신분으로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육에 대한 엄청난 열정도 알고보면 사회적 신분상승이 그 이유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종과 자유인의 구분이 없다. 종은 노예근성으로 살지 않으며 자유인은 종처럼 행한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런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여유로움이 있다. 그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인이며 사람의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를 섬기듯이 일하는 것. 그 자유함으로 주님은 오늘도 나를 초청하신다.
일상의 삶에서 사회적 신분이 너무 중요하다. 자신을 소개할 때도 신분으로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육에 대한 엄청난 열정도 알고보면 사회적 신분상승이 그 이유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종과 자유인의 구분이 없다. 종은 노예근성으로 살지 않으며 자유인은 종처럼 행한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런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여유로움이 있다. 그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인이며 사람의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를 섬기듯이 일하는 것. 그 자유함으로 주님은 오늘도 나를 초청하신다.
Wednesday, July 15, 2009
QT-고전6:12 - 6:20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2 "Everything is permissible for me"--but not everything is beneficial. "Everything is permissible for me"--but I will not be mastered by anything.
주께서 허용하신 것들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 허용하신 것들이 전부인 것처럼 그기에 매여서 살 수도 있다. 선택 가능한 개인적 자유를 주님께 드릴 때 신적인 삶, 능력있는 삶으로 성령님이 인도하신다. 성령님. 허락하신 것들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온전한 뜻이 나의 삶 속에 이루어지게 도와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께서 허용하신 것들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 허용하신 것들이 전부인 것처럼 그기에 매여서 살 수도 있다. 선택 가능한 개인적 자유를 주님께 드릴 때 신적인 삶, 능력있는 삶으로 성령님이 인도하신다. 성령님. 허락하신 것들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온전한 뜻이 나의 삶 속에 이루어지게 도와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Monday, July 13, 2009
QT- 고전 5:1 - 5:13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유월절에 유대인들은 양을 잡고 묵은 누룩을 집안에서 제해야 했다.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누룩없는 순전한 삶이 요구된다. 문제는 죄의 결과에 대한 심각성이 무뎌지고 그 죄를 허용하는 것이다. 나의 제해야 할 묵은 누룩은 무엇인가? 누룩없는 떡으로 오늘 하루를 드리자.
유월절에 유대인들은 양을 잡고 묵은 누룩을 집안에서 제해야 했다.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누룩없는 순전한 삶이 요구된다. 문제는 죄의 결과에 대한 심각성이 무뎌지고 그 죄를 허용하는 것이다. 나의 제해야 할 묵은 누룩은 무엇인가? 누룩없는 떡으로 오늘 하루를 드리자.
Friday, July 10, 2009
QT-고전 4:14 - 4:21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20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talk but of power.
고린도교회는 지식과 은사가 넘치는 교회였던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들보다 좀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골치다. 바울은 주께서 허락하신다면 고린도로 가서 그들의 능력을 평가해볼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말로는 바울을 이리저리 평가할만큼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바울은 알았다. 능력은 없고 그저 말뿐이라는 것을. 지금도 좀 쓰임받고 알려진 지도자들을 향해서 얼마나 말들이 많은가? 이런 부류는 주로 좀 배웠다고 말씀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본문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음을. 능력은 좀 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능력은 바울을 본 받는 삶에서 나온다. 바로 인간적으로 지혜롭고 높아지는 것 대신 어리석고 낮아지고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다. 능력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고 살아가는 삶에서 나온다.
20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talk but of power.
고린도교회는 지식과 은사가 넘치는 교회였던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들보다 좀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골치다. 바울은 주께서 허락하신다면 고린도로 가서 그들의 능력을 평가해볼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말로는 바울을 이리저리 평가할만큼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바울은 알았다. 능력은 없고 그저 말뿐이라는 것을. 지금도 좀 쓰임받고 알려진 지도자들을 향해서 얼마나 말들이 많은가? 이런 부류는 주로 좀 배웠다고 말씀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본문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음을. 능력은 좀 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능력은 바울을 본 받는 삶에서 나온다. 바로 인간적으로 지혜롭고 높아지는 것 대신 어리석고 낮아지고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다. 능력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고 살아가는 삶에서 나온다.
Thursday, July 9, 2009
QT-고전 4:6 - 4:13
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To this very hour we go hungry and thirsty, we are in rags, w e are brutally treated, we are homeless. 12 We work hard with our own hands. When we are cursed, we bless; when we are persecuted, we endure it; 13 when we are slandered, we answer kindly. Up to this moment we have become the scum of the earth, the refuse of the world.
고린도 성도들은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왕처럼 존귀해졌다. 바울은 어떠한가? 주를 위해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고, 홈리스 (homeless)가 되고, tent maker 로 다른 사람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았고, 모욕을 당해도 축복하고, 박해를 인내하며, 비방을 받아도 권면하는 삶을 살았다. 우리는 어떠한가? 솔직히 우리는 무슨 영적인 고수가 된 것처럼 배부른 교인들을 향해서 안타까워하는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을 이해하기에는 성공이나 성장에 관심이 너무 많다. 영적인 에너지는 떨어질 때 발생하는데 온통 올라가려고만 하니...
To this very hour we go hungry and thirsty, we are in rags, w e are brutally treated, we are homeless. 12 We work hard with our own hands. When we are cursed, we bless; when we are persecuted, we endure it; 13 when we are slandered, we answer kindly. Up to this moment we have become the scum of the earth, the refuse of the world.
고린도 성도들은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왕처럼 존귀해졌다. 바울은 어떠한가? 주를 위해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고, 홈리스 (homeless)가 되고, tent maker 로 다른 사람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았고, 모욕을 당해도 축복하고, 박해를 인내하며, 비방을 받아도 권면하는 삶을 살았다. 우리는 어떠한가? 솔직히 우리는 무슨 영적인 고수가 된 것처럼 배부른 교인들을 향해서 안타까워하는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을 이해하기에는 성공이나 성장에 관심이 너무 많다. 영적인 에너지는 떨어질 때 발생하는데 온통 올라가려고만 하니...
Wednesday, July 8, 2009
예수의 평화, 세상을 향한 용기-코스타 2009
오늘부터 시카고 위튼 칼리지에서 코스타가 열린다. 청년 짐 엘리엇이 걸었던 그 교정을 들어서는 순간 은혜에 빠져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혹은 신혼여행을 대신해서 혹은 후배들을 차에 태우고 15시간을 운전해서 혹은 하나님의 기적같은 공급하심으로 참석했던 코스타... 그때에 꾸었던 순수한 꿈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설레인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 (peace maker)로 부름받았지만 우리에게는 정작 예수의 샬롬이 얼마나 없는지... 온통 욕망에 뒤틀려져 악취를 풍기고 있다. 임하소서 예수의 샬롬!
예수의 평화, 세상을 향한 용기 Shalom of Jesus, Courage against the World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복음 16:33, 표준새번역)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길을 걷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아무리 그 길이 가치 있고 소중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 길을 가는 일은 우리를 쉽게 절망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 밝은 결과가 있음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 더욱이 그 밝은 미래를 현재의 삶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면, 지금 가는 그 길이 아무리 어둡고 험해도 우리는 그 두려움과 싸울 수 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으로 사는 일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고 있는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기는커녕 바로 그 로마의 손에 잡혀 매 맞고 십자가를 지고 죽는 일, 세상의 가치로 볼 때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세리와 죄인들을 찾아가서 친구가 되는 일, 소외받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베푸는 일, 한 사람의 가치를 효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일, 원수에게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보다 그 원수를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일 등은 예수께서 이 땅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모델이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가 선뜻 들어서기에 두렵고 좁은 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두렵고 좁은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셨고, 우리에게도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이 가신 그 길에 담대하게 들어서라고 초청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 끝에 밝은 미래가 있음을 알고 있기에 그 어둡고 험한 길을 가며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 길이 승리의 길이라는 것,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명백한 증거는 바로 예수의 부활이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바로 그 육체를 입고 다시 이 땅에서 부활하셨다. 생명이 사망을 이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예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만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 계신 것이 아니라, 그는 실제로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하시고 우리가 사는 이 땅 위에 사셨다. 동시에, 예수를 왕으로 모신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몸을 입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예수께서 부활할 모든 육체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
그 길의 끝에 있는 밝은 결과, 그때에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하나님의 평화(Shalom)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기대하시던, 하나님, 인간, 모든 만물 간에 창조질서가 완성된 모습이다. 평화(Shalom)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될 미래에 있지만, 동시에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새로운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주어진다.
만일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그 완성된 하나님의 평화(Shalom)를 경험할 수 있다면, 이 세상 속에서 어그러진 질서와 그릇된 세계관에 대항하여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절대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혹시 있을 수 있는 현재의 고통과 어려움이 끝이 아님을 알기에, 또 우리가 결국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 때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태초로부터 의도하셨던 완성된 평화’(Shalom)에 거할 것을 믿기에,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거스르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또한, 용기를 가지고 세상에 당당하게 맞서는 삶을 사는 가운데, 완성된 평화(Shalom)를 경험해 갈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그러진 질서에 거스르는, 하늘의 가치를 가지고 이 땅을 살아내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그릇된 가치가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그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좌절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안전하다고, 또 많은 물질을 소유하면 평안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그릇된 사상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또한, 소외된 자들을 무시하며, 효율을 위해 덜 중요해 보이는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속삭이는 유혹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당당하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세상을 살아낼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긍정하고 적극적 사고방식을 가지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승리가 주어졌기에, 그를 통한 평화(Shalom)가 현실화되었기에 할 수 있다.
KOSTA-2009 운동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을 이기신 예수를 알기 원한다. 세상이 비웃는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죽으셨지만, 다시 부활하셔서 이 땅을 사신, 또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원한다. 결국에는 이 땅에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평화(Shalom)를 이루실 것이며, 지금도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서 그 완성된 삶을 살게 하시는 예수를 경험하기 원한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미 승리하신 예수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는 용기를 다시 추스르고자 한다.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더 큰 불안으로, 가진 사람에게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과 잃어버릴 것에 대한 또 다른 불안감으로 사람들을 노예 삼는 어그러진 풍조를 향해 진정하고도 유일한 대안을 우리가 삶으로 보여주기 원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꿈을 잃어버린 세대를 향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Shalom)안에서 우리는 다시 꿈과 이상과 소망을 가질 수 있음을 선포하기 원한다.
예수의 평화, 세상을 향한 용기 Shalom of Jesus, Courage against the World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복음 16:33, 표준새번역)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길을 걷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아무리 그 길이 가치 있고 소중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 길을 가는 일은 우리를 쉽게 절망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 밝은 결과가 있음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 더욱이 그 밝은 미래를 현재의 삶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면, 지금 가는 그 길이 아무리 어둡고 험해도 우리는 그 두려움과 싸울 수 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으로 사는 일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고 있는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기는커녕 바로 그 로마의 손에 잡혀 매 맞고 십자가를 지고 죽는 일, 세상의 가치로 볼 때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세리와 죄인들을 찾아가서 친구가 되는 일, 소외받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베푸는 일, 한 사람의 가치를 효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일, 원수에게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보다 그 원수를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일 등은 예수께서 이 땅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모델이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가 선뜻 들어서기에 두렵고 좁은 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두렵고 좁은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셨고, 우리에게도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이 가신 그 길에 담대하게 들어서라고 초청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 끝에 밝은 미래가 있음을 알고 있기에 그 어둡고 험한 길을 가며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 길이 승리의 길이라는 것,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명백한 증거는 바로 예수의 부활이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바로 그 육체를 입고 다시 이 땅에서 부활하셨다. 생명이 사망을 이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예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만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 계신 것이 아니라, 그는 실제로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하시고 우리가 사는 이 땅 위에 사셨다. 동시에, 예수를 왕으로 모신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몸을 입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예수께서 부활할 모든 육체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
그 길의 끝에 있는 밝은 결과, 그때에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하나님의 평화(Shalom)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기대하시던, 하나님, 인간, 모든 만물 간에 창조질서가 완성된 모습이다. 평화(Shalom)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될 미래에 있지만, 동시에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새로운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주어진다.
만일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그 완성된 하나님의 평화(Shalom)를 경험할 수 있다면, 이 세상 속에서 어그러진 질서와 그릇된 세계관에 대항하여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절대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혹시 있을 수 있는 현재의 고통과 어려움이 끝이 아님을 알기에, 또 우리가 결국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 때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태초로부터 의도하셨던 완성된 평화’(Shalom)에 거할 것을 믿기에,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거스르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또한, 용기를 가지고 세상에 당당하게 맞서는 삶을 사는 가운데, 완성된 평화(Shalom)를 경험해 갈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그러진 질서에 거스르는, 하늘의 가치를 가지고 이 땅을 살아내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그릇된 가치가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그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좌절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안전하다고, 또 많은 물질을 소유하면 평안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그릇된 사상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또한, 소외된 자들을 무시하며, 효율을 위해 덜 중요해 보이는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속삭이는 유혹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당당하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세상을 살아낼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긍정하고 적극적 사고방식을 가지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승리가 주어졌기에, 그를 통한 평화(Shalom)가 현실화되었기에 할 수 있다.
KOSTA-2009 운동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을 이기신 예수를 알기 원한다. 세상이 비웃는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죽으셨지만, 다시 부활하셔서 이 땅을 사신, 또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원한다. 결국에는 이 땅에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평화(Shalom)를 이루실 것이며, 지금도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서 그 완성된 삶을 살게 하시는 예수를 경험하기 원한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미 승리하신 예수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는 용기를 다시 추스르고자 한다.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더 큰 불안으로, 가진 사람에게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과 잃어버릴 것에 대한 또 다른 불안감으로 사람들을 노예 삼는 어그러진 풍조를 향해 진정하고도 유일한 대안을 우리가 삶으로 보여주기 원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꿈을 잃어버린 세대를 향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Shalom)안에서 우리는 다시 꿈과 이상과 소망을 가질 수 있음을 선포하기 원한다.
QT-고전 3:21 - 4:5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일꾼의 덕목은 충성이다. 충성은 꾸준함이다. 사람들의 칭찬에 교만하거나 비판에 낙심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판단과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당장의 시시비비에 매이지 않는 것이다. 한자어의 모양대로 마음의 중심을 주님께 두는 것이다. 주님. 오늘도 은혜의 삶을 사는 자유함으로 맡겨진 길을 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일꾼의 덕목은 충성이다. 충성은 꾸준함이다. 사람들의 칭찬에 교만하거나 비판에 낙심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판단과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당장의 시시비비에 매이지 않는 것이다. 한자어의 모양대로 마음의 중심을 주님께 두는 것이다. 주님. 오늘도 은혜의 삶을 사는 자유함으로 맡겨진 길을 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Tuesday, July 7, 2009
QT-고전 3:1-20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For no one can lay any foundation other than the one already laid, which is Jesus Christ.
바울은 자신을 지혜로운 건축자로 비유하면서 고린도교회가 “예수(는) 그리스도”의 기초위에 세워졌음을 말한다.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성령님이 오셨다. 본문은 믿는 성도들이 성전이며, 그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사람의 지혜로 예수의 십자가 대속을 대체하는 것. 유행을 따라서 용하다는 것들로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똑똑한 사람들이 내공싸움을 벌이고 시기와 분쟁을 일으키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를 더럽힌다... 왠지 안좋은 기억들이 떠올라 마음이 쎄하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주” 이 고백으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For no one can lay any foundation other than the one already laid, which is Jesus Christ.
바울은 자신을 지혜로운 건축자로 비유하면서 고린도교회가 “예수(는) 그리스도”의 기초위에 세워졌음을 말한다.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성령님이 오셨다. 본문은 믿는 성도들이 성전이며, 그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사람의 지혜로 예수의 십자가 대속을 대체하는 것. 유행을 따라서 용하다는 것들로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똑똑한 사람들이 내공싸움을 벌이고 시기와 분쟁을 일으키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를 더럽힌다... 왠지 안좋은 기억들이 떠올라 마음이 쎄하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주” 이 고백으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Friday, July 3, 2009
QT-고전 2:4-11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자칭 왕이라 하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사건.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보고 싶지 않은 비극이고 헬라인들에게는 우스꽝스런 희극일 뿐이다. 그 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구원계획,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어찌 알겠는가? 하나님은 이 비밀을 성령을 통해서 계시해 오셨다. But God has revealed it to us by his Spirit. The Spirit searches all things, even the deep things of God. 이 비밀을 아는 것이 하늘의 지혜다.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성령님... 솔직히 나에게 그 분을 아는 지식이 너무 없다...
자칭 왕이라 하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사건.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보고 싶지 않은 비극이고 헬라인들에게는 우스꽝스런 희극일 뿐이다. 그 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구원계획,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어찌 알겠는가? 하나님은 이 비밀을 성령을 통해서 계시해 오셨다. But God has revealed it to us by his Spirit. The Spirit searches all things, even the deep things of God. 이 비밀을 아는 것이 하늘의 지혜다.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성령님... 솔직히 나에게 그 분을 아는 지식이 너무 없다...
Thursday, July 2, 2009
QT-고전 1-2장
1장-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장-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1-22 Jews demand miraculous signs and Greeks look for wisdom, 23 but we preach Christ crucified: a stumbling block to Jews and foolishness to Gentiles, 24 but to those whom God has called, both Jews and Greeks, Christ the power of God and the wisdom of God…. 2-4 My message and my preaching were not with wise and persuasive words, but with a demonstration of the Spirit's power…
서양사상의 두축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다. 전자가 종교적 축이라면 후자는 인본주의의 축이다. 예수의 복음은 신본과 인본 두가지 모두에게 외면당한다. 영광스런 메시아(그리스도) 를 기다리던 히브리인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는 그리스도의 표적(sign) 이 될 수 없었다. 인간적인 지혜를 쫓던 헬라인들에게는 그런 예수를 믿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다. 복음의 전달자나 피전달자에 상관없이 문제는 가지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니라 가진 것 때문에 생긴다. 능력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 안에 갇혀서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말씀의 지식에 갇혀서 어떤 이들은 은사에 갇혀서 성령의 역사를 방해한다 (많은 경우 이 두파는 서로를 비난한다). 사도 바울처럼 심히 두려워하고 떨리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해 있지 않기에 그런 여유를 부리는 것이다.
1-22 Jews demand miraculous signs and Greeks look for wisdom, 23 but we preach Christ crucified: a stumbling block to Jews and foolishness to Gentiles, 24 but to those whom God has called, both Jews and Greeks, Christ the power of God and the wisdom of God…. 2-4 My message and my preaching were not with wise and persuasive words, but with a demonstration of the Spirit's power…
서양사상의 두축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다. 전자가 종교적 축이라면 후자는 인본주의의 축이다. 예수의 복음은 신본과 인본 두가지 모두에게 외면당한다. 영광스런 메시아(그리스도) 를 기다리던 히브리인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는 그리스도의 표적(sign) 이 될 수 없었다. 인간적인 지혜를 쫓던 헬라인들에게는 그런 예수를 믿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다. 복음의 전달자나 피전달자에 상관없이 문제는 가지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니라 가진 것 때문에 생긴다. 능력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 안에 갇혀서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말씀의 지식에 갇혀서 어떤 이들은 은사에 갇혀서 성령의 역사를 방해한다 (많은 경우 이 두파는 서로를 비난한다). 사도 바울처럼 심히 두려워하고 떨리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해 있지 않기에 그런 여유를 부리는 것이다.
Wednesday, July 1, 2009
QT-로마서 1:17-28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바울의 이 메시지를 듣고 있으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컥하면서 뭔가가 올라온다. 말의 지혜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십자가를 헛되게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듣고 전하는 복음은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우리의 구미에 맞는 그런 복음은 아닌가? 십자가의 도를 전하면서도 복음의 그 폭발적 능력을 알고 있기나 한 것인가?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가? 어느 주석가는 “제자 삼으라”는 말씀을 “너와 같은 사람들을 만들어라” 로 해석했다. “나를 교훈 삼아서 나의 전철을 밟지마라”라고 말하면 마음이 편할 것인데 그런 해석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다.“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말씀은 나를 구원의 삶으로 초청하신다. 쇼는 그만하고 나는 정직하게 이 말씀에 반응해야 한다.
바울의 이 메시지를 듣고 있으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컥하면서 뭔가가 올라온다. 말의 지혜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십자가를 헛되게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듣고 전하는 복음은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우리의 구미에 맞는 그런 복음은 아닌가? 십자가의 도를 전하면서도 복음의 그 폭발적 능력을 알고 있기나 한 것인가?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가? 어느 주석가는 “제자 삼으라”는 말씀을 “너와 같은 사람들을 만들어라” 로 해석했다. “나를 교훈 삼아서 나의 전철을 밟지마라”라고 말하면 마음이 편할 것인데 그런 해석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다.“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말씀은 나를 구원의 삶으로 초청하신다. 쇼는 그만하고 나는 정직하게 이 말씀에 반응해야 한다.
Subscribe to:
Posts (Atom)